거머리처럼 달라붙은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무슨 용건이 있어서

만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빚 갚을 돈을 빌려주지도 못하고

승진 및 전보에 도움이 되지도 못하고

아들딸 취직을 시켜 주지도 못하고

오래 사귀어 보았자 내가

별로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는 오래전에 눈치챘을 터이다

만나면 그저 반가울 뿐,

서로가 별로 쓸모없는 친구로

어느새 마흔다섯 해 우리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막역지우란 서로의 뜻에 거스름이 없는 허물없는 친구를 말한다. 뜻에 거스름이 없다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며 편안함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 친구라면 '쓸모있는 친구'보다 '쓸모없는 친구'에 가까울 듯하다.

'쓸모있는 친구'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주거나 의지가 되는 친구인데, 사실 그런 사심 없는 친구를 가지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누군가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순간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훼손되기 때문에, 쉽사리 손을 내밀기도 부탁을 들어주기도 어렵다. 그 엄연한 인간관계의 내밀한 정서를 바보가 아닌 한 누구나 안다. 그래서 '쓸모있는 친구'는 사실상 곁에 두기 어렵고, 우리 주변의 친구라는 존재는 대부분 '쓸모없는 친구'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 '쓸모없는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우리는 늘 잊고 살아간다. 항상 곁에 있기 때문에 한참을 잊고 지내다가도 이따금 걸려오는 '쓸모없는 친구'의 전화 한 통화에 기분이 들뜨고 환해진다. '쓸모없는 친구'는 결코 내게 무리한 부탁을 하지도 않고, 그냥 처음 만나던 그 편안한 웃음으로 나를 바라봐 준다. 석가모니 앞에 가섭이 지었다는 염화미소가 그럴 것이다.

인생의 큰 것들을 서로 주고받지 않으면서도 끈질기게 옆에 생존해 있는 존재, 나의 주검에 담담히 달려와 소주 한잔 추억의 되뇌임으로 누운 영혼을 쓸쓸히 한번 안아줄 수 있는 존재, 그런 친구라면 평생을 함께 걸어가는 막역지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나 또한 내 친구들에게 그런 별 '쓸모없는 친구'가 되어 오래오래 그들의 기억에 마음의 고향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권영준 시인·인천삼산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