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여리디 여리다. 치켜들어본 이들은 기억한다. 촛불광장을 이루려면 쉴 새 없이 불을 댕기고 불씨를 나누어야 한다. 2018년 6월, 인천시민이 '촛불교육감'을 세웠다. 태풍 속에서 취임했고 붉은 물 사태에 이어 코로나19 와중에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비상사태 아니었던 나날을 꼽기 어렵게 지나왔다. 인천교육에 촛불 정신을 담아 낼 여력이 있었을까? 정황은 변명거리가 되겠지만 시민들은 엎친 데 덮친 재난 파고에 시름이 깊다. 앞모습에선 찾을 수 없는 생활의 진면목들이 드러난다. 촛불이 비춰야 할 지점이다. 인천교육의 뒷모습으로 촛불을 옮겨야 한다.

스포트라이트. 각광. 휘황한 빛들이 눈앞으로 쏟아질 때 뒷그림자는 곱절로 캄캄하다. 이전 교육은 주로 앞줄을 비췄다. 모두를 비추자고 해도 발아래는 어둡다. 거기에 촛불을 켤 때다. 무상교육과 무상급식. 도달하기 힘든 인천교육의 과제였다. 촛불교육감이 큰 고지에 올라섰다. 뒷모습으로 갈 때다. 인천은 문화적 배경이 다른 다문화 학생이 많다. 모두에게 똑같은 식단을 받으면 금기음식이라 수저를 대지 못한다. 학교 밀집도를 낮추려니 점심 급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이 다수다. 가정에서 이뤄지는 돌봄을 확인하기 어렵다. 학습지체와 영양지체가 온라인 학습 뒤에 숨어서 자라고 있다.

코로나19는 고기 식단 위주 급식에 경종을 울린다. 무상 급식이 받아든 2라운드 숙제다. 서울교육청은 채식을 골라서 먹을 수 있게 방향을 틀고 있다. 인천에도 '고기 없는 ○요일' 가능할까? 입맛에 평균이 없고 편식습관 바꾸기 쉽지 않다. 결식을 선택하는 학생이 의외로 많다. 아이들은 무심히 음식을 버린다. 무상에 책임이 따르게 하는 일, 난제다. 모두 그레타 툰베리가 될 수는 없다. 그가 도달한 각성에 이를 가능성을 누구나 담지하고 있다고 믿을 뿐. 먹거리에서부터 기후재앙에 맞서는 훈련을 시작해야 미래도, 미래교육도 있다. 식판에서부터 '무상교육2.0'으로 전환하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뒷모습증후군(Child's Back Syndrome)'은 일렬종대로 늘어선 시험대형이 원인이었다. 인천 혁신교육은 앞모습을 찾아내는 모둠학습으로 문제를 풀어 왔다. 다시 일렬로 돌아간 학생들은 급우의 뒷모습만 쳐다본다. 증후군이 문제가 아닌 새로운 일상이다. 얼굴이 보이는 세상은 줌(Zoom)이나 웨벡스(Webex Meet) 프로그램 안으로 들어갔다. 성장기 감성은 접촉을 먹고 입으며 자란다. 만질 수 없는 세계에 감성을 욱여넣으며 교사들이 버티고 있다. 현실이 불가항력은 맞다. 미래교육을 띄우면 그 신기루가 오늘 못 나눈 관계를 채워줄까? 뒷모습을 통해 앞모습까지 읽어 내야 미래로 가는 '관계력'이 생긴다.

미셀 투르니에는 시선을 옮겼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떨고 있는 뒷모습은 앞모습이 말하려는 진실을 넘어 선다. 굽은 등을 꼿꼿이 선 채로 볼 수는 없다. 허리를 굽히면 앞모습이 하려는 말까지 들을 수 있다. 황현산은 '밤이 선생이다'에,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 뒷모습을 실었다. 팀 아이텔이 그린 표지 그림이 말을 건넨다. 코로나19가 만들어 낼 진풍경을 예견했을까? 타인을 깊이 들여다 볼 때라는 예언이었을까? 사람이 등만 보일 때가 있다. 뒷모습만으로 온전한 한 사람을 떠올리려 해 본다.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온갖 풍상을 다 대입해 본다. 오래 걸리지만 지금은 뒷모습에 천착할 때이므로.

뉴스를 보며 학교가 움직이고 있다. 뉴스가 문을 열라면 열고 닫으라면 닫는다. 사이에 낀 인천교육 또한 몸피가 납작해진다. 일선 학교와 정부 사이를 넓히며 자치 공간을 확대하려던 안간힘이 얇아졌다. 인천교육만이 지닌 표정을 살린 앞모습을 보여 줄 기회가 없다. 교육자치 가능성은 뒷모습에 있다. 학교에 촛불을 켜겠다던 약속을 기억한다. 자세히 살피려 불을 댕기고 나누려면 위에서 비춰선 안 된다. 촛불을 낮춰 들어야 그림자 없는 뒷모습이 드러난다.

 

임병구 인천 석남중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