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송도해수욕장과 연결된 수문과 갯골.

 

꼭두새벽부터 매표소 앞은 장사진을 쳤다. 전날부터 찜해 놓은 솔밭 명당자리는 알록달록한 텐트로 꽉 찼고 해뜨기 전 이미 모래사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한때 하루 입장객이 5만명에 달했던 인천 송도유원지의 얘기다.

며칠 전 옛 송도유원지를 다녀왔다. 유원지의 '흔적'을 더듬어보고 혹시 '유물'이라도 건져볼까 하는 마음에 미리 관리 회사의 허락을 받고 안을 둘러봤다. 2011년 폐장된 후 '사람 반 물 반'이었던 해수욕장에는 이제 피서객 대신 각종 중고차가 백사장에 꽉 들어차 있다. 탈의실, 놀이기구, 야외무대 등 유원지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시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문득 생각나는 시설이 있었다. 바닷가 쪽 유원지 구석에 있던 수문(水門)이다. 어렸을 적 송도유원지에 놀러 갔다가 엠뷸런스가 출동했던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물을 가뒀던 인공해수욕장은 하루에 두 번 밀물과 썰물에 맞춰 수문을 통해 바닷물을 끌어들였다가 내보내며 수질 관리를 했다. 열어놓은 수문 언저리는 물살이 아주 셌다. 이곳에서 종종 익사 사고가 나곤 했다.

중고차 사이를 요리조리 비껴가며 옛 기억을 더듬어 수문 쪽으로 다가갔다. 수문은 그대로 있었다. 비록 매립되었지만 물길은 그대로 살아 있어 여전히 이곳까지 바닷물이 다다랐다. 옛 생각에 잠겨 수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외국인 한 명이 다가왔다. 옆 단지로 가는 지름길 역할을 하는 작은 다리를 건너갈 참이었다. “Where are you from?” 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대답했다. “Ghana”. 아프리카 가나에서 왔다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특히 송도는 상전벽해 그 자체다. 그가 지나간 작은 다리로 나의 기억과 추억도 함께 건너갔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