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산에서 온 흰 피의 꼭두가 서 있다

비틀어진데다 거친 칼질의

나보다 몸집이 큰 꼭두가

붉은 꽃을 사타구니 가득 피워 물고 서 있다

저만큼 떨어져서 걷던 그의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온다

나에게 포개지며 없는 그림자 하나가

뻐근하게 내 몸속으로 들어와 꽉 차 넘친다

꼭두가 나를 능가하며 나를 밀어내며

나를 죽여 놓고 살려내어 크게 숨 쉬게 한다

내 방의 사방 벽에 가득 찬 그의 얼굴이

내가 만난 과거의 사람들 얼굴을 하고

무수하게 많은 꼭두로 태어나 색칠되어 서 있다

내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무수히 많은 얼굴들이

나무로 깎여져 시시각각 다른 눈동자를 하고

슬픔이거나 한숨 까르르 웃음소리 내며

바람소리 나는 허공을 보고 있다

새를 타고 달리고 나무 로켓을 타고 달리고

봄꽃들을 타고 달리고 호랑이를 타고 달리고

용을 타고 달리고 거친 바람소리를 타고 달리는데

나를 움켜잡은 그의 꼬부라진 발가락 열 개가

새의 발톱처럼 강인해서 그를 떠나올 수가 없다

 

 

꼭두는 주체의 일부분이다. 수많은 자아들이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수많은 얼굴들이다. 그런 꼭두는 비틀어진 데다 거친 칼질이 나 있다. 그 칼질이 난 곳에 사타구니 가득 붉을 꽃을 피워 물고 있다. 여기서 시인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본다. 통점에서 꽃을 피우는 사물들, 사람들, 대상들에 시인의 촉수는 가 닿아 있다. 그러면서 그 고통을 단순히 통각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무한한 생명력과 생성을 암시하고 있는 대상으로 승화시킨다.

그러니까, 시인에게 흠집이나 흉, 칼집 등은 상처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귀한 것이다. 흠을 흠으로 보지 않는 시인의 감각이 돋보인다. 흠이 없는 삶이 있을까. 아름다움은 수많은 흠을 가진 존재일수록 더 강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강동우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