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 개월만 같이…기묘한 동거 끝내지 못했다
▲ 연극 '안개가 걷히면'의 한 장면. /사진제공=떼아뜨르 다락

 

“육 개월만 같이 살다 꽃잎 바람을 타고 날 듯. 그렇게 시원하게 헤어지자 말했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이 기묘한 동거를 끝내지 못했다.”

인천 중구 신포동에 있는 연극 전문공간 '떼아뜨르 다락'에서 17일부터 26일까지 '2020 다락 신작프로젝트' 첫 번째 작품으로 '안개가 걷히면'을 무대에 올린다.

김민수가 극본을 쓰고 박상우가 연출을 맡은 '안개가 걷히면'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특성화극장 프로그램으로 평일에는 오후 7시30분, 토·일요일은 오후 4시에 공연한다.

뇌종양을 진단받은 마흔두 살의 무명 시인 '호영'은 물려받은 재산이 꽤 되어 경제적 여유는 있지만 벗어나려고 해도 결국은 부모의 그림자 안에 갇혀있는 남자다. 알츠하이머를 진단받은 서른 살의 정신보건임상심리사 '혜실'은 삶에 치여 여유 따위는 없고,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 전부인, 일탈 따위는 해본 적도 없는 여자다. 훤칠한 외모에 유복해 보이는 서른 살의 세무사 '형희'는 실상은 부모의 부재 후 찬밥으로 성장했고, 그 외로움을 기반으로 성공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외로운 남자다.

이들 세 사람이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우정 같은 사랑도 하고, 사랑 같은 의지도 하며, 결국은 '기묘한 동거'라는 이름의 가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너무 어둡지 않게, 비윤리적이지 않게,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그려냈다.

예술감독으로 작품에 참여한 떼아뜨르 다락 백재이 대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희곡공모를 했고 총 다섯편의 작품을 선정했다. 그 중 '안개가 걷히면'을 첫 번째로 정한 건 제목 때문이었다. 코로나로 일상이 점멸됐을 때 안개 걷히듯 그렇게 걷혔으면 그 바람의 주문이 컸다”며 “공연을 알리기 위해 문자를 보내는 일이 단순히 홍보전달만이 아닌 '나, 여기, 아직, 살아서, 이제껏 내가 하던 일, 계속하고 있다'라는 생존신고가 되고 있는 그런 날들이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