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통형 가지가 마디에서는 잘록하고 점점 부푼 형태를 띠어 다른 종들과 쉽게 구분되는 불등풀가사리. /사진제공=이은영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

 

인천 옹진군의 서해5도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소청도의 분바위는 지구연대 약 5억7000만년 전인 선캄브리아기에 살던 남조류(원핵 조류)의 화석이다. 이곳에서 다양한 해조류들이 바위에 부착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래서 옹진군에서는 이 지역의 토착 해조류를 잘 보존하고 주민들에게도 보탬이 되는 '가사리'의 증식 가능성을 찾고 있다고 한다.

'가사리'라는 명칭은 해조류 중 붉은색을 띠는 홍조류 이름에 종종 등장하는데, 대개 무슨 무슨 가사리로 불린다. 예를 들면, '우뭇가사리', '돌가사리', '풀가사리'처럼 '가사리'라는 이름에 특징을 표현하는 접두어를 붙여 쓰는 경우다. 가까운 종들의 묶음인 속(屬) 정도의 무리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우뭇가사리속은 끓이면 부드러운 한천이 되지만, 남은 줄거리는 종이를 만들 정도로 질기다. 돌가사리는 끝이 뾰족하고 질감이 단단해서 굳이 식용하지는 않는다. 반면 풀가사리는 해조류 전체를 끓이거나 튀겨서 그대로 음식으로 먹을 수 있는, 버릴 것이 없는 해조류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풀가사리는 풀처럼 끈적한 점액질을 가지고 있다. 해안지역의 구전 전통지식에서도 풀가사리가 호료(糊料), 즉 풀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풀가사리속에는 불등풀가사리, 참풀가사리, 애기풀가사리 등이 우리나라에 보고되어 있다. 그 가운데 불등풀가사리(Gloiopeltis furcata)는 원통형 가지가 마디에서는 잘록하고 점점 부푼 형태를 띠어 다른 종들과 금방 구분된다. 질감은 좀 질기지만 내부에 공기가 차 있어 누르면 풍선같이 탄력이 있다. 불등풀가사리는 갯바위의 가장 위쪽에 삐죽삐죽 돋아나 있을 뿐 아니라, 여러 개체가 함께 모여나기 때문에 눈에 잘 띈다.

불등풀가사리는 홍조류이기 때문에 붉은색, 분홍색, 자주색 등으로 보여야 하지만, 종종 갈색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과도한 빛을 막아주는 갈색 색소 때문이다. 얕은 곳에 사는 해조류가 과도한 햇빛을 받게 되면 광합성 조직이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이때 그늘막처럼 광합성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갈색의 카로티노이드 색소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생물도감이라 할 수 있는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불등풀가사리로 추정되는 종가채에 대해 마치 그 모양이 금은화의 꽃망울과 유사하다고 표현되어 있다('현산어보를 찾아서' 中 이태원 지음, 청어람미디어). 약재로 쓰이는 말린 금은화는 인동덩굴의 꽃으로 처음에는 흰색이다가 점점 노랗게 변하는데, 그 모양이 불등풀가사리와 많이 닮았다.

서해안에서는 연안 해조류가 그리 다양하지 않지만, 섬에서 자라는 해조류들은 연안보다 다채롭다. 또 서해5도 지역은 겨울에 수온이 낮아 북방계 해조류도 자랄 수 있는 환경이다. 이처럼 다양한 부착 해조류의 터전으로서, 철새나 바다 동물의 서식처로서 귀중한 인천의 섬들이 앞으로도 청정하게 유지되길 바란다.

 

배은희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