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개봉한 <여인의 향기>에서 알파치노가 처음 만난 여인과 함께 탱고를 추는 장면은 영화사에서 지금도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남는다. 극중 시각을 잃은 퇴역 장교 '프랑크'는 인생의 끝을 생각하며 자신을 도우러 온 '찰리'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이때 우연히 만난 한 여인과 함께 추는 탱고 장면은 강렬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열정, 낭만, 영혼의 춤을 추는 영화 속 짧지만 아주 강렬한 이 장면은 '탱고'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탱고는 1870년대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카라는 지역에서 발생했다. 보카는 하층민이 모여 사는 가난하고 낡은 부둣가로 그곳 사람들의 다양한 노래와 춤이 결합되면서 새로운 음악이 생겨났다. 그 당시 아프리카 흑인들, 쿠바의 선원들, 전쟁 난민이 된 유럽의 이민자들이 이 지역으로 대거 유입되어 뒤섞이면서 현대의 탱고와 가장 가까운 형태의 음악이 탄생하게 되었다.

고달팠던 이민자들과 내몰린 하층민들의 삶을 위로하고 애환을 달래주던 춤과 음악인 탱고에 흐르는 선율은 라틴계 사람들의 정열적인 민족성을 담고 있다. 또, 탱고 음악과 함께 추는 춤은 시원스러운 동작과 현란한 스텝으로 그 뜨거움을 표현한다.

탱고하면 떠오르는 악기 '반도네온'은 탱고의 영혼이라 불리는 악기로 작은 손풍금을 떠올리면 된다.

탱고는 '이 악기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만들어진 춤'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르헨티나 탱고를 특정 짓는 주요 악기이다. 반도네온의 무게감 있고 애조 띠는 음색은 탱고의 상징과도 같으며 반도네온의 연주법은 탱고의 독특한 리듬을 완성시켰다.

탱고는 유럽 대륙을 열광 시킨 최초의 라틴 음악이었다. 1912년 당시 유럽의 유행을 선도하던 프랑스 상류층 사이에서 탱고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뒤이어 이탈리아, 독일, 영국, 미국 등에서도 이목을 끌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자유로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탱고는 1920년대 황금기로 접어들게 된다.

1920~1930년대에는 유럽에서도 탱고 음악이 많이 생산되면서 유럽 스타일의 탱고가 확립되어 간다. 애절하고 어두운 음색의 '반도네온' 보다 경쾌하고 밝은 '아코디언'과 다채로운 현악기가 많이 사용되었다. 아르헨티나 이민자들의 거칠고 한이 서린 고독함은 유럽의 화려하고 우아한 색조를 더해 '콘티넨털(유럽의)탱고'로 탈바꿈하게 된다. '리베르 탱고(Libertango)'는 탱고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작곡한 곡으로, 1974년 발표되었다. 제목은 'Libertad' (스페인어 : 자유)와 '탱고'를 합친 것으로, 고전 탱고에서 누에보 탱고로 가는 피아졸라의 변화를 상징한다. 1세대인 카르롤스 가르델에 이어 피아졸라 등 2세대 음악인들에 의해 활짝 꽃피어진 탱고의 매력적이고도 정열적인 선율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매력적인 멜로디들이고 뭐라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다.

춤곡으로서의 고전 탱고가 아닌 진정으로 귀로 즐기는 탱고, 즉 피아졸라가 추구하던 누에보 탱고(Nuevo Tango, 새로운 탱고)를 상징하는 곡으로 평가받는다. 피아졸라는 침체기에 있던 1960~1970년대 고전 탱고에 클래식을 접목시켜 탱고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열었고 리베르탱고에서 그가 추구하던 탱고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영화 <여인의 향기> 중 알파치노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인생과는 달리 탱고엔 실수가 없어요. 단순해요. 그래서 탱고가 멋진 거죠. 만약 실수를 하면 스텝이 엉키게 되는데, 그게 바로 탱고입니다.' 이 작품에는 제목과 달리 여인의 향기가 없다. 자살 여행을 떠나는 부유하지만 앞을 볼 수 없는 퇴역 장교와 미국의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는 가난한 고학생 찰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참다운 가치가 돈도 명예도 사회적 명성도 아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람간의 '순수'와 '용기'이며 그것이 곧 사람의 향기임을 말하고 있다. 장마기간이라 습하고 더운 이 여름 시원한 탱고음악과 영화를 감상하면서 무더위를 식혀 보자.

 

김승희 아마티앙상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