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문명에 대한 회의를 표출하는 여러 글들이 나왔다. 현 사태를 문명의 역기능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첨단문명과 생명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은 인간에게 편리함은 물론 질병과 노화를 넘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구조적인 발전이 초인류로 진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초인류까지는 아니더라도 생물학적 한계 정도는 쉽게 넘어설 줄 알았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그것이 환상에 불과했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문명의 참패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구촌 곳곳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헤매고 있다.

첨단 과학문명이 모든 것을 이룩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한낱 바이러스 앞에 이렇게까지 무력하고 초라한 존재인지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문명은 포기할 수 없지만 과부하로 이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코로나 사태로 에너지소비 등이 줄어들자 지구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는 것은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가속페달만 밟는 문명에 대한 경고는 사실 수십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다만 우리가 듣지 못했으며, 들었음에도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도취가 그 미세한 경고음을 무시하게끔 했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인간 중심의 논리에서 발생되는 문제들을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문명에 대한 신앙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현 사태를 더 강한 문명, 첨단의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이들이 있다. 코로나 백신도 1년 내에 개발될 것이라는 장담이 나온다. 호모 사피엔스(현생인류)가 끊임없이 발전해 왔듯이 신화는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러한 태도를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한 가지 바이러스를 잡으면 또 다른 바이러스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바이러스 감염증을 떠올리면서, 유행하는 전염병의 80%가 야생동물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현대문명이 일으킨 자연파괴와 인간의 무분별한 동물살육에 대한 각성을 요구한다. 문명이 겸손해지고 자제되지 않는 한 바이러스 엄습이 일상화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문명의 현란함과 풍요만 보지 말고 그 뒤에 감춰진 치부를 직시해야 할 때다. 문명의 모순에 대한 성찰을 토대로 인식과 사유가 바뀌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다. 문명의 재정립이 현재의 사태에 가장 효과적인 대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