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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기고] 인천내항, 백범 그리고 평화통일
[릴레이 기고] 인천내항, 백범 그리고 평화통일
  • 인천일보
  • 승인 2020.06.30 18:11
  • 수정 2020.06.30 18:10
  • 2020.07.01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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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내항 개방을 위한 예산이 의회에서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인천 앞바다가 인천시민의 눈앞에 펼쳐지는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이전 후 비워진 제2국제여객터미널 주변지역 답사를 진행했다. 청사 안은 굳게 문이 닫혀있지만 청사 밖은 운동을 위해 광장 일대를 돌거나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지역주민들의 모습이 종종 보인다. 내항 개방이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이미 이곳은 지역주민들의 휴식의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내항 제2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바다를 등지고 인천여상을 바라보면 바로 그곳이 축항 건설을 감독하던 일본순사들이 있던 언덕이다. 제2국제여객터미널과 1부두가 백범 김구선생이 노역으로 동원되었던 바로 그 장소인 것이다. 1892년 출간된 <인천사정>의 저자인 아오야마 고헤이가 '아름다운 여자들과 눈부신 전망의 경치로 현악기 소리가 늘 해안을 씻어내는 파도소리와 어울려 끊이지 않는다' 고 기록한 인천여상 언덕이 축항 기공식의 장소인 동시에 축항 건설을 감독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축항 건설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인천 앞바다에 갑문을 건설하여 화물의 선적과 유통을 원활하게 한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백범의 노역의 현장이기도 한 제2국제여객터미널을 중심으로 하는 1_2부두는 당시 가장 중요한 수출품목인 쌀의 반출을 위한 정미업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축항 건조 후인 1910-20년대에 크게 확장되었던 신흥동 및 만석동의 입지를 기준으로 정미업의 입지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산업적 특성에 따른 입지론이다. 산업의 속성에 따라 원료지향형(생산지 가까이에 위치)인가, 유통 중심의 시장지향형인가, 아니면 운송지향형(교통이 편리한 곳에 위치)인가로 나눌 수 있다. 인천 정미업의 경우도 초기 운송비를 되도록 줄일 수 있는 항만이나 철도와 근접하고 세관창고 시설에서 가까운 위치인 신흥동에 정미공장을 배치하는 것이 효율적이었으며, 인천에서 가장 활발하게 정미산업이 분포하고 성장해 나간 공간이라는 점은 이러한 이유라고 볼 수 있겠다.

둘째, 정미업은 출하 및 운반에 필요한 노동인력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위치에 그 입지를 선정하였다는 점이다. 조선인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정미업의 위치는 초창기에 외국인 거류지에 가깝게 위치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배후지로 확장되어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곧 일본인의 생활중심지가 조선인 생활지역까지 팽창되어 오는 과정과 병행한다. 이러한 정미업의 공간은 일본인 관리자의 삶과 노동자의 삶이 대립적으로 함축되어 있는 공간의 반영으로서 가치가 있다.

셋째, 산업은 그 유통과정에 있어 유리한 지리적 입지를 선호한다. 중국인과 서양인들의 거주가 많았고 중국인 상권이 활성화되었던 인천역 부근보다는 노동공급에 수월한 조선인 마을에 근접하고, 유통과 시장형성(당시 큰 어촌시장으로 발달했던 신포시장)이 위치한 탁포 일대는 정미업이 성장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백범의 강제노역 현장은 이후 노동집약적인 남성노동자들의 하역운수업과 여성노동자들의 작업장인 정미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일본제국주의의 노동착취에 항거하는 연대파업의 현장이 되는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긴담모퉁이길이 끝나는 답동성당과 기독병원 근처에 주로 거주했던 조선노동자들은 새벽의 어스름을 밝혀주는 가로등 불빛 아래로 줄을 지어 가다가 긴담모퉁이길 초입에서 남성노동자들은 부두하역운송업인 조선우선주식회사, 조선운송주식회사로 여성노동자들은 작업현장인 정미소로 갈라졌다. 축항 배후의 산업 현장으로 1930년대 조선에서 가장 큰 노동쟁의의 현장이었던 조선우선주식회사 창고인 옛 국일관은 일본의 극우 자본인 유니클로가 자리를 잡았다.

긴담모퉁이길은 지역주택조합 재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얼마 전에는 오쿠타정미소의 건물과 창고가 철거되었고 하역운송업의 중심이었던 조선운송주식회사 마루보시 사택마을이 사라질 위기다. 인천 내항 개방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는 내항의 경제적인 가치뿐만이 아니라 내항과 주변 배후지역이 안고 있는 우리나라 근대산업의 발달과 그 과정에서 성장해 간 노동자들이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국모복수'를 위해 일본인을 살해한 열혈청년 김창수가 인천 감리서 감옥에서 민족의 지도자 백범 김구로 새로 태어나게 한 인천이다. 백범 노역의 현장으로 상징되는 인천 내항의 재생, 문화강국과 평화통일을 염원했던 선생의 정신에서 시작하자.

 

장회숙 인천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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