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국회 17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차지하자(정보위원장은 미정) 험악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보수진영 쪽에서는 '신 독재', '신 적폐'라며 민주당이 매도하던 독재정치를 거꾸로 닮아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5공화국 군사독재 시절로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또 1987년 민주화 이후 상임위원장 여당 싹쓸이는 처음인 점을 들어, 민주화가 이룬 국회의 원칙과 전통이 민주화를 자처하는 정권에 의해 무너졌다고 항변한다. '의회 폭거', '민주주의 조종'이라는 구호도 자연스레 등장했다. 진보진영인 정의당마저 “비상식적인 국회 운영”이라며 상임위원장 투표에 불참했다.

이러한 비상식이 만들어진 동력은 무엇일까. 물론 오롯이 민주당 책임이라는 답변이 우세하겠지만, 미래통합당이 유도한 측면이 없지 않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지난 29일 원구성 협상 타결 직전까지 갔다가 결렬됐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상임위원장을 11대 7로 배분하는 가합의안을 작성하기로 의견 접근에 이르렀지만 제동이 걸렸다.

민주당은 이를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김 위원장이 과도하게 원내 진행되는 사안에 개입하는 것 같다”는 말이 공식적으로 나왔다. 통합당은 이를 부인하는 것은 물론, 합의 직전까지 갔다는 사실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한민수 국회의장 공보수석비서관은 여야 원내대표 회동 후 브리핑에서 “사실상 협상 초안까지 만들었으나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무게감을 둘 수밖에 없는 것은, 공보수석은 최소한 팩트를 조작하지 않는다고 기자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원내대표간 합의가 이뤄졌다고 해도, 통합당이 민주당의 상임위원장 독식을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를 여러 차례 드러낸 점으로 미뤄 당론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통합당은 “민주당이 늘 우리에게 발목 잡는다고 비판하는데 발목을 안 잡을테니 잘 해보라”, “18개 상임위원장을 다 가져가라는 게 빈말이 아니다”라고 밝혀왔다.

민주당이 실제로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하면 여론이 통합당에게 불리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통합당이 원내투쟁과 여론전을 선언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어찌됐든 민주당의 상임위원장 독식은 통합당이 덫을 놓은 듯한 '입법독재 프레임'에 갇혀 향후 행보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3차 추경예산안 처리가 급하기는 했겠지만, 통합당의 전략적 몽니에 대응하는 뾰족한 계책이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