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부역 인근 사라진 수인선 철길.

 

필자는 기차 소리를 태교음으로 들었고 기찻길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 우리 집 옆으로 '북해안선' 철길이 지나갔다. 인천역에서 인천제철(현 현대제철)까지 이어진 철길로 화물열차가 하루에 두세 번 오고 갔다. '저 기차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점점 멀어지는 기차의 꽁무니를 보면서 막연하게 '미지의 세상'에 대한 꿈을 꾸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기찻길에서 놀다가 친구 몇 명과 함께 서행하는 기차 화물칸에 몰래 올라탔다. 기차가 속도를 내며 동네가 점점 멀어지자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화수부두 입구에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뛰어내렸다.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잡풀 속에 몇 바퀴씩 굴렀다. 그때 뛰어내리지 못했다간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다.

철도는 태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옛 수인선(남인천역∼소래역), 동양화학선(남인천역~동양화학), 축항선(남부역~항만구역), 주인선(남부역~주안역), 북해안선(인천역~인천제철), 부평군용철도(3보급단~부평역) 등은 지역에서 사라진 철길들이다. 현재 기차가 운행되지 않거나 아예 철길이 뜯겨 나간 상태다. 그저께 '인천 원도심 철길 주변 활성화 방안' 용역 최종 보고회가 시청에서 있었다. 지역의 균형 발전을 위해 철도자산이 지닌 역사적 가치를 활용해 철도 유휴부지를 도심 내 녹지 공간을 확충하고 지역의 장소성을 부각 시키는 방안을 고민하는 자리였다.

뉴욕 하이라인 파크, 베를린 쥐게렌데 자연공원, 파리 뤼소정원 등은 폐선 철도를 멋지게 재생시킨 사례들이다. 기차가 운행될 때보다 오히려 철길이 뜯긴 이후 명소가 된 곳이다. 사라진 우리 지역의 폐선에도 이에 못지않은 수많은 이야기가 철길 만큼 길게 이어져 왔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미지의 세상'에 대한 꿈을 싣고 오는 인천 기찻길을 제대로 살펴볼 때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