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우리나라를 겨냥해 수출규제 정책을 꺼냈다. 지난해 7월1일 전격 발표하고 4일 바로 실행했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다. 8월에는 수출허가 간소화 대상국인 '화이트 국가' 목록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폭격했던 것처럼 말이다.

과연 일본의 공격은 성공했을까?

일본의 기습적인 수출 규제 단행이 1년을 맞는 가운데 반도체 소재의 공급망과 거래처 다변화 등에서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전화위복의 계기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우선 일본 수출 규제 1년 만에 소부장의 국산화 성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SK머티리얼즈는 해외 의존도가 100%였던 기체 불화수소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미 순도 99.999%의 양산을 시작했고, 연간 15t 규모로 시작해 앞으로 3년 안에 국산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액체 불화수소는 이미 지난해 수출규제 조치 직후 솔브레인·램테크놀로지가 공장 증설을 통해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 디스플레이업계는 1년 만에 일본산 액체 불화수소를 100% 국내 기업 제품으로 대체한 상태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액체 불화수소는 국산 제품 사용 비중을 늘렸고, 기체 불화수소는 미국 등을 통해 수입 다변화로 대응했다.

반도체 기판 제작에 쓰이는 포토레지스트(PR)는 한때 일본 의존도가 92%에 달했다. 현재는 벨기에·독일 등으로 공급처가 늘었다. 국내 기업 중에도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하는 동진쎄미켐이 올 초 공장 증설을 확정했다. SK머티리얼즈도 ArF 포토레지스트 개발을 위해 내년까지 공장을 완공해 2022년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5㎚ 이하의 초미세 공정에 쓰이는 EUV용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당장 국산화하지는 못하고 있다. 워낙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듀폰이 올 초 EUV용 포토레지스트 공장을 충남 천안에 짓기로 결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듀폰과 협의해 투자를 유치했다. 순수 국산화까지는 못 갔지만 일본이 아닌 해외 기업 유치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한 셈이다.

또 다른 규제 품목인 불화 폴리이미드는 국산화가 한창이다. 불화 폴리이미드는 주로 폴더블 스마트폰이나 롤러블 TV 등 '휘어지는' 디스플레이에 사용한다. 국내 업체 중에는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경북 구미에 생산 설비를 갖추고 지난해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SKC도 연간 100만㎡를 생산할 수 있는 대규모 설비를 충북 진천에 갖추고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소재 공급 안정화와 국산화가 이뤄질 수 있던 배경에는 정부의 역할도 한몫했다. 산업부는 불화 폴리이미드는 2010년, 포토레지스트는 2002년부터 기술개발 과제로 지원해왔다. 일본의 수출규제 직후 기업의 애로사항을 원스톱으로 해결하기 위한 소재부품수급대응지원센터를 운영한 것도 결정적이었다. 일 수출규제의 여파는 극복했지만 민관 협력은 계속돼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수출규제를 돌이켜 보면 한국경제의 고질적 약점인 소부장의 공급로를 틀어막으면 우리나라가 백기투항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1년, 우리는 '국난'으로 불리던 위기를 생각보다 쉽게 극복해 냈다.

하지만 1년만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산업과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계 등 산업은 물론 일본을 대표하는 자동차산업이 한국에서 철수를 발표하고 떨이 세일을 벌이고 있으며, 일본맥주는 이제 입맛조차 기억하기 쉽지 않아졌다. 한마디로 일본의 공격에 일본이 제대로 당했다. 태평양 제해권을 내준 미드웨이 해전처럼 그들은 쓸쓸히 물러나야 했다.

흔히 제조업을 '한국 경제의 허리'라고 말한다. 한국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 신경망이 제조업에 몰려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제조업을 떠받치는 허리는 무엇일까. 소부장이 탄탄하지 않으면 생산물이 뛰어날 수 없다.

대기업이 제조업의 근간이라면, 중소기업은 소부장의 근간이다. 코로나19 확산여파로 한국의 K방역이 범글로벌적 관심을 모으는데는, 질병관리본부의 철저한 준비와 대응이 있었고, 이를 진단시약과 마스크생산이 뒷받침해주었기에 가능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국난과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 난국의 타개의 길목은 '허리'를 얼마나 잘 간수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한민국의 허리지역 인천·경기지역에서 '허리'의 역사가 시작되길 기원한다.

 

 

김칭우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