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포럼(상임대표 정세일) 첫번째 ‘평화 순례’ 행사에 참여한 일행들이 인천 중구청(옛 인천시청)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6•25전쟁 70주년을 돌아보고 ‘평화도시 인천’을 모색하는 생명평화포럼(상임대표 정세일)의 첫 번째 ‘평화 순례’가 27일 인천 중구청 일원에서 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평화운동가와 시민 등 30여 명이 동행한 가운데, 이희환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대표의 해설로 진행됐다.

이 대표는 순례에 앞서 한국전쟁 전후 인천지역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과 미군의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에 대해 설명했다.

이희환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대표가 인천보도연맹 학살과 미군 폭격 현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민간인 학살은 미군이 입항한 1945년 9월 8일 인천항에서 벌어졌다.

사건 당일 미군을 환영하기 위해 이 곳으로 모여든 시민들을 향해 경비를 맡고 있던 일본 잔류 경찰이 무차별 총격을 퍼부은 것이다.

이 사건으로 2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후 인천 곳곳에서 좌·우익 청년단에 의한 테러와 학살이 벌어졌으며, 인천상륙작전 때는 미군의 폭격으로 1만여 명이 사망했다.

일행은 집결지인 인천역을 출발해 옛 인천시청 자리인 중구청과 인천경찰서 터를 둘러봤다.

옛 인천시청에서는 전국 최초로 추정되는 보도연맹원 대량학살 사건이 자행됐다.

보도연맹은 애초 이승만 정부가 ‘좌익 세력을 전향시킨다’’는 목적으로 조직됐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정부는 연맹에 가입한 좌익인사들을 집단으로 학살했다.

1950년 6월 29일부터 7월 3일 사이 인천에서만 1800여 명의 보도연맹원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경찰서 유치장에서는 반공연맹 간부와 기관원 102명이 인민군에 의해 살해당했고, 1•4 후퇴 때에는 같은 자리에서 반대편에 의해 700여 명이 학살됐다는 증언이 전해진다.

이밖에도 월미도 앞바다와 수인역, 송도해안, 간석동 원통고개, 창영동 야전장유공장, 영흥도 등지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평화 순례’에 참여한 순례단 일행이 이희환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대표로부터 옛 인천시청 일대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순례단은 홍예문을 지나 맥아더 동상이 서있는 자유공원에 도착해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 대표는 “해방정국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좌·우익 이념 대립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됐다”면서 “이제는 반목과 갈등을 접고, 화해와 평화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2020 인천시 평화도시 공모사업’으로 개최된 첫 번째 평화순례는 생명평화포럼이 주관하고 인천시가 후원했다.

이 행사는 오는 8월 29일 영흥도 옛 미 해군첩보기지 주변, 10월 10일 부평미군기지, 11월 21일 수봉공원과 인천상륙작전기념관 등지에서 계속된다.

한편 생명평화포럼은 ‘인천시 평화도시 공모사업’의 또 다른 행사인 ‘시민평화강좌’를 마련했다. 이달 17일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에 이어 오는 11월 12일까지 모두 6차례 개최할 예정이다.

제 2강은 7월 2일 ’70년 전쟁 상태를 끝내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란 주제로 문경환 국민주권연대 정책위원장이 진행한다.

▲제 3강(8월 20일)은 전갑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인천상륙작전, 어떻게 볼 것인가?(미 국무부 문서로 본 인천상륙작전) ▲제 4강(9월 10일)은 최태욱 (사)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장의 ’인천상륙작전/공포의 기억과 승리의 기억‘ ▲제 5강(10월 15일)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유엔사를 통한 한반도 개입전략’ ▲제 6강(11월 12일)은 이재봉 원광대 교수의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과 한반도의 미래’로 이어진다. /글·사진 = 정찬흥 논설위원·인천일보 평화연구원 준비위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