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25일 파리 샤를 드골(CDG) 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 전체가 비상상태였다. 프랑스가 자랑하던 초음속기 콩코드가 이륙직후 추락해 승객 100명과 승무원 9명 그리고 추락지점 호텔 직원 4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 직후였다. 이날 추락한 콩코드기는 독일 여행사의 전세로 뉴욕에서 호화 유람선에 승선할 독일인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동안 추락사고를 보도하는 신문과 TV에는 슬퍼하고 비통해 하는 유족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고원인을 추적하는 심층보도가 계속되고 있었고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유족들의 정중한 장례미사 정도가 보도되고 있었다. 콩코드 직전에 이륙한 미국의 컨티넨탈 항공기의 엔진덮개가 활주로에 떨어진 것이 원인이었다는 결론이 날 때까지 4년여 동안 프랑스 언론은 끈질기게 사고 조사 내용을 보도하고 있었다. ▶1971년 한진 고속버스가 추풍령 부근에서 30명의 승객이 사망하는 대형사고가 났다. 당시 버스사고의 사망 보상금은 기십만원선이 보통이었다. 한진고속 사고가 있기 전 그레이하운드에서 50만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한 선례가 있어 한진에서는 100만원을 보상금으로 제시했다. ▶당시 한진그룹은 베트남 특수로 자금이 풍부한 기업으로 알려져서 유족들은 한진 측에 150만원을 요구하며 보상금액을 계속 올려달라고 했다. 일부 유족은 서울 소공동에 있던 한진그룹 본사 앞에서 관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한진그룹 총수였던 고 조중훈 회장이 유족 대표에게 300만원은 해드려야 하는데 미안하다는 말이 빌미가 되어 결국 일인당 300만원이라는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보상금이 지급되었다. ▶그후 인명사고가 나면 언론들은 유족들의 애통해 하는 정경을 지면과 화면에 지속적으로 내보내면서 보상금 관계까지 세부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인명사고가 났을 때 유족들의 비통함이나 애절함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유독 대한민국의 언론기관들은 애통해 하는 유족들의 일거수일투족과 보다 많은 보상금 요구를 경쟁적으로 보도한다. 사건의 원인과 재발 방지책 그리고 책임자에 대한 사법상의 처벌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숨진 38명의 영결식이 사건 53일만에 거행되었다. 언제까지 50년간 계속된 비통해하는 유족들 중심의 언론보도 관행이 계속될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언론인 신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