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하면 생각난다. 초등학생 시절 이맘때면 선생님은 항상 숙제를 내줬다.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 등 섬뜩한 구호들이 담긴 표어나, 북쪽사람들을 늑대 등으로 묘사하는 반공포스터였다. 나아가 “이 연사” 어쩌구 하는 반공 웅변대회도 학년별, 학교별 선수를 뽑아 전교생을 땡볕에 모아놓고 열었다. 이렇듯 전쟁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뼛속 깊이 동족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는 반공교육을 시켰다. 당시 군사독재정권의 대국민 통치술이었다.

이렇듯 40년 군사독재정권 시절은 분단과 전쟁 등으로 인한 이산가족들이 수백만이 있음에도 동족을 죽여야 할 ‘적’으로 알고 살아야 했던 남북관계 빙하기였다. 그러다 1989년 문익환목사님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소속 임수경이 정권의 탄압을 뚫고 방북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그즈음 북을 방문했던 작가 황석영이 쓴 북 방북기행문 제목이 오죽하면 “사람이 살고 있었네” 였을까? 급기야 1991년에 이르러 남과 북 정부 차원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맺으면서,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바뀌고, “평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당사자로 규정하면서 적대 관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0년 6월13일은 우리 민족사에 역사적인 날이었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이후 양 정상이 처음으로 만난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맺은 6.15남북공동선언은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킨 이정표였다. 그 이후 2007년 10.4선언, 그리고 2018년 3번에 걸쳐 남북정상이 만나서 맺은 4.27판문점선언, 9.19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까지, 남과 북은 이명박•박근혜정권 시절 잠시 중단되었지만 평화와 통일의 동반자 관계로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어 왔다.

그랬던 남북관계가 1991년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수차례 공개적으로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측 정부가 미온적으로 나오자, 판문점선언에서 금지하기로 했던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북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담화와 통일전선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적은 역시 적”이라며 남과의 관계를 ‘대적관계’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6월16일에는 사전 경고했던 것처럼 남북교류 상징이었던 개성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무참히 폭파시켰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결실을 이루는 “가을이 올 줄 알았는데, 건너뛰고 겨울이 오고 말았다”고 장탄식을 했다.

“현재는 과거의 축적이고, 미래는 현재의 반영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분단된 지 벌써 72년, 동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된 6월25일이 70년이 지난 요즈음, 어떻게 만들어 온 동반자관계였는데, 남과 북이 다시 ‘적대관계’가 된다는 것은 8천만 겨레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단의 사슬을 끊기 위해 숱한 사람들이 세대를 거쳐 지난 70여년을 감옥 가고 죽고 하면서 만들어 왔던 것인데... 하는 생각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자괴감마저 든다.

이 사태를 다시 되돌리는 일은 남과 북 정부 당국자들이 다시 나서야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돌아가신 김대중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벽에다 대고 욕이라도 해라” 그럼 남과 북이 또다시 극한 대립을 하는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한국전쟁 관련 강연 자리에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그랬다. “남과 북이 서로를 고무 찬양해야 관계도 좋아지고, 통일이 빨리 온다”고 말이다.

개성연락사무소가 폭파된 6월16일 그날은 공교롭게도 영원한 자유의 시인 김수영이 47세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날이기도 하다. 그 김수영 작품 중에 2008년 인하대 김명인교수가 발굴하여 ‘창작과비평’ 문예지에 발표한 <김일성 만세>라는 시가 있다. 4.19혁명이 일어났던 1960년에 이 시를 쓴 김수영시인은 당시 어떤 마음을 담아 썼는지 모르지만 일기장에는 “언론자유에 대한 고발장”이라고 썼다고 한다. 그럼 어떠랴. 시야 읽는 사람 맘 아닌가!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이성재 인천자주평화연대추진위원회 위원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