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의 경험은 힘이 세다. 어떠한 진리도 개인의 경험 앞에서는 약한 개념이 되어버린다. 경험은 그가 직접 겪어낸 일이기에, 사실만으로는 다 말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가령, 옛날에 다니던 모교를 방문한 사람이 바라보는 교실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바라보는 교실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인식된다.

경험은 개인이 직접 체험한 일이기에 세상의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 그것은 그가 살아온 역사성이며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삶의 의미를 결정한다. 즉,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자기 삶의 흔적이며, 살아낸 증거가 된다. 경험이 없는 주장들은 힘이 없다. 그것은 누군가 안 듣겠다고 말하면,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경험이 거부당할 때, 그 사람은 사방팔방이 꽉 막힌 느낌이 든다. 그것은 단순한 합리적 설명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겪은 일을 누군가 부인하면, 그 사람과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도, 새로운 미래를 생각할 수도, 오늘이 기쁠 수도 없다. 경험을 거부당하는 것은 살아 있는 존재를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경험을 왜곡하면서 조롱하는 것은 그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교살행위와 다름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경험을 모욕하고, 개인이 역사의 질곡을 겪어낸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대로 왜곡하고 비트는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의 경험 자체를 거부하거나 기망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볼 때 그러하다. 이것은 사실을 의심하거나 다르게 보는 것과는 다르다. 한 사람에게는 정당하게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부당하게 보일 수 있다. 그것은 논쟁을 하고, 토론을 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한 개인이 겪어낸 일들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면서, 그것을 자의적으로 평가하고, 그것을 비틀어서 그의 주장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경험을 어떠한 것이라고 왜곡하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왜? 직접 겪은 일을 타인들이 왜곡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사회는 누구도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는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경험을 왜곡하거나 부인하는 과정이 오래 지속되고, 누구도 개입해 경험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들이 모이는 사회는 참으로 진실하게 소통하기 어렵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면서도 겉으로는 좋은 말을 쏟아내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찌 마음 편히 살 수 있는가?

삶의 족적과 가치를 결정하는 개인의 경험을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써먹고 난 대가는 혹독하다. 이후에는 진실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모든 것이 강한 발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회에서 어찌 올바른 사람이 자랄 수 있는가.

그 대가는 그런 사람에게도 고통으로 이어지게 된다. 타인의 경험을 부인하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도 믿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정립할 수 없기에, 외부에 자신이 공격할 사람이 있을 때만 인생의 즐거움을 느낀다. 결국, 그런 사람은 분열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평상시는 참 정의로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만의 정의를 강요하게 된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적대감을 느낀다.

우리는 서로의 경험을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자신의 삶으로 세상을 아름답고 정의롭게 만들 수 있으며, 나아가 정말 소중한 역사의 가치를 후대에게 물려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진실을 말하는 자들이 서글픔을 느끼고 그림자처럼 역사 속에 묻혀버릴 것이다.

 

차명호 평택대 상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