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전 '이발소 풍경'에 전시된 옛 이발 도구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이발소 '봉변' 사건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한달에 한번 윗동네 단골이발소에 갔다. 어느 날, 내 몸에 흰 천을 둘러주는 이발사 아저씨 입에서 술 냄새가 확 났다. 바리깡을 들자마자 안채 살림집에서 나온 자기 누나와 무슨 문제로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점점 말이 거칠어지면서 슬슬 바리깡도 거칠어졌다. 이발사가 급기야 폭발했다. 바리깡을 거울에 던져버렸고 이발소 안 세간살이들이 날아다녔다. 내 머리는 반쪽만 작업이 된 상태였다. 깨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반인반수(伴人半獸) 괴물의 모습이었다. 누가 볼까 봐 머리를 감싸 쥐고 수도국산 똥고개를 구르다시피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도 머리털이 쭈볏 거리는 기억이다.

1895년 11월17일 '단발령'이 이 땅에 내려졌다. 임금과 세자가 먼저 상투를 잘랐고 '체두관(剃頭官)'이라 일컫는 사람들이 가위 칼을 들고 백성의 상투를 자르고 다녔다. 1907년 순종이 즉위하며 또다시 단발령이 내려졌다. 위생과 편익의 이로움을 느꼈는지 처음과 같은 강한 반발은 없었다. 도성 거리에는 머리칼을 자르는 장소, 이발소(理髮所)가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난달 말 인천시립박물관은 기획특별전 '이발소 풍경'을 마련했다. 이제 오래된 이발소는 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바리깡, 면도칼 갈기 가죽띠, 물조리개 등 이발 도구는 '유물'이 되었다. 이발의 변천사와 풍속을 흥미롭게 풀어낸 특별전은 안타깝게도 코로나 재확산으로 잠시 중단됐지만 곧 '신장개업'할 것이다. 동네 이발소는 머리카락 수만큼이나 많은 추억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 알록달록 시간이 반복해서 돌고 도는 이발소의 삼색등을 타고 잠시 추억 속으로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어려웠던 시절의 동네 이발소 풍경을 그려 보는 것은 코로나 사태 속 정신적 '백신'의 효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