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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대북전단(삐라) 살포가 문제되었을 때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집단 거주지인 인천 남동구 논현택지개발지구 12단지를 찾았다. 대북전단 살포가 탈북민단체에 의해 이뤄졌기에 탈북민들은 당연히 동조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곳에서 거주하는 탈북민들은 대북전단 살포에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탈북민들의 사랑방처럼 활용되는 아파트 상가 반찬가게에 모여 있던 10여명의 탈북민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삐라 살포로 북한 주민들이 달라질 것은 없다. 그들은 이미 남한이 더 잘산다는 것을 알고 있다.”, “탈북자들은 대개 북에 부모형제가 있기에 남북정세가 불안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삐라를 뿌린 탈북민단체는 정체가 불분명한 집단이며, 탈북민단체 이름으로 전단을 뿌리는 것은 탈북자들을 팔아먹는 일이다.”

최근 다시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삼고 있는 가운데, 접경지역인 경기도 김포 주민들은 탈북민단체를 향해 대북전단 살포행위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대북전단 살포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짓”이라고 밝혔다. 접경지역 시장_군수들도 건의문에서 “정부와 국회는 대북전단 살포가 근절되도록 강력한 조치를 마련하고, 위반시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법령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지난 8일 강화군 삼산면 석모리 해변에서 탈북민단체와 선교단체가 쌀과 성경을 담은 페트병을 100여개를 바다에 띄워 북측에 보내려다 주민들이 가로막자 되돌아갔다. 탈북민단체들은 오래 전부터 진행해온 일이지만, 주민들은 최근 북한 당국이 대남 비난 수위를 높여가는 등 불안감이 커지자 페트병을 바다에 띄우는 사람들이 이동하는 비포장길을 아예 굴삭기로 막았다.

하지만 접경지역 주민들이 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태도다. 통일부는 “전단 살포는 남북 간 판문점선언에 위배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면서도 그동안 사실상 대북전단 살포를 방치해 왔다. 여당인 민주당도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그렇지만 삐라 살포가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남북 정상이 평화와 공존을 선언한 상태에서 대북전단은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와서 정부와 민주당 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등 호들갑을 떨고 있다. 북한의 김여정이 “전단 살포를 금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고 엄포를 놓은 직후였다. 이러니 미래통합당에서 '김여정 하명법'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도 하다.

한 여권 인사는 “군병력을 동원해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또 민주당 중진은 “대북전단 살포는 위험천만한 소동이자 평화통일 정신을 거역한 반헌법적 망동”이라고 말했다. 북한 조선중앙TV 뉴스진행자의 어투가 연상된다. 정부와 민주당이 욕을 얻어먹으면서까지 북한에게 성의를 표했지만 돌아온 건 남북 간의 모든 통신선 차단이다. 게다가 “대남(對南)사업을 대적(對敵)사업으로 전환하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기려면 힘이 있어야 하지만 져주는 데는 머리가 뒷받침된 용단이 필요하다. 그동안 대북전단 살포는 실익도 없이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해, 대화의 걸림돌 내지 북한에게 시빗거리를 제공하는 빌미로 작용해 왔다. 흔히 하는 말로 '영양가 없는' 사안이다.

따라서 당국이 대승적 차원에서 일찍이 북한 입장을 수용해 탈북민단체의 삐라 살포에 적극 대응했어야 했다. 마음만 먹으면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방도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럼에도 전단 살포에 대해 “표현의 자유가 있고, 민간단체의 자율적 행위이기에 실정법상 제지할 근거가 없다”는 어정쩡한 논리를 내세워 방치해 오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토록 '실정법' 운운하던 통일부가 대북전단을 살포한 탈북민단체 2곳을 갑자기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고발한 것은 또 뭔가.

한 탈북민은 “김정은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그를 노골적으로 욕하는 삐라가 뿌려지는 상황에서 원활한 대화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탈북자만한 식견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대북정책의 일선에 서 왔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요란스럽게 뒷북을 치다 뺨까지 맞은 이들이 안타깝다.

 

논설위원 김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