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명이 희생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는 건강염려증이라는 희한한 병을 앓았다. 연유는 히틀러가 말단 병사로 참전한 1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 서부전선에서 세균전을 겪은 그는 감염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갖게 됐다. 때문에 히틀러는 집권 이후 감기에 걸린 사람과는 절대 면담을 하지 않았고, 자기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먼저 손을 철저히 씻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뭔가 작금의 사태가 연상된다. 또 목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일정을 중단하고 주치의를 찾았다. 광기 어린 학살자가 자신의 몸은 그토록 아꼈다니 괴이한 일이다.

역사학자들은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히틀러의 심신이 약해져 판단력이 흐려지고 나라를 통치할 능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하지만, 주치의들은 히틀러의 건강상태는 양호했다고 증언했다. 다만 죽기 전에 경미한 파킨슨병과 지속적 스트레스로 인한 고혈압을 앓은 사실은 인정했다.

독일의 노이만은 히틀러 병력전기문에서 다음과 같은 최종적 판단을 내렸다. “히틀러에게 질환이 있었느냐에 대한 질문에 답변은 다음과 같다. 히틀러의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사리분별도 가능한 상태였다.”

코로나 사태가 확산, 진정, 재확산되는 패턴이 되풀이되면서 과도한 바이러스 염려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마트에만 다녀와도 찜찜하다. 엘리베이터 버튼과 집키 비밀번호를 누른 뒤에는 그곳에 혹시 균이 붙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이 움츠러든다. 집에 들어가면 조금 안심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는 낮 동안에 전염된 것은 아닐까 불안해진다. 걱정을 안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걱정하는 자신이 또 걱정스러워진다.” 지인의 솔직한 고백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마스크를 쓰고, 손을 소독하고, 방역을 하고 나서도 금방 다시 심각한 불안을 느껴 똑같은 절차를 반복해도 안심이 안된다.

코로나 창궐 이후 비슷한 심리상태를 겪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감염을 우려하지만, 점차 자신이 감염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된다. 이렇게 되면 '염려'의 급이 달라진다.

이것이 철저하게 방역수칙을 이행하는 계기로 작용하면 약이 되지만, 정도가 심해져 강박·공황으로 번지면 자신을 갉아먹어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사람은 아프지 않아도 아픈 것 같은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이 단계로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염려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반대로 흐를 수도 있는 것이다. '뭐든지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생각을 꼭 붙들어매고 있어야 한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