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호 동료 수감자 "검사가 '별건 수사' 암시…추가 기소돼 징역 더 살아"
"한씨가 한명숙에 돈 건넸다 말한 적 없지만, 비서진에 '많은 돈' 줬다고 했다"
▲ 10년 전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 검찰의 위증 종용이 있었다는 진정을 받아 진상 파악에 나섰다. 사진은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모습. 2020.6.2

 

 

 

▲ 지난해 9월 이희호 여사 빈소를 방문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수감자에게 '별건 수사'를 암시하며 증언을 강요했다는 주장이 또 나왔다고 7일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넨 인물로 지목된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사건이 불거지기 전부터 한 전 총리의 비서진에게 '많은 돈'을 건넸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씨의 동료 수감자 K씨는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한명숙 사건 수사 당시 특수부·공안부 검사들이 증언에 협조할 것을 반복해서 요구했다"고 7일 밝혔다.

당시 일산에 거주하며 건설시행업을 하던 K씨는 2009년 분양 사업과 관련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징역 2년형을 받아 같은 해 5월부터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었다.

K씨는 한 씨가 2010년 초 통영교도소로 이감되기 전까지 약 5∼6개월간 한 씨와 같은 방에서 생활했다.

그는 한씨와 또래인 데다 같은 건설시행업을 하고 있었고 한씨가 사업을 하던 일산에 사는 등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아 가깝게 지냈다. 실제로 K씨는 한씨의 부부관계, 한씨 모친의 성격 등 한 씨의 알려지지 않은 사생활까지 기억해냈다.

K씨가 검찰의 증언 협조 요청을 받기 시작한 건 한 씨가 "한 전 총리에게 직접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법정에서 뒤집은 직후였다고 했다.

검찰은 한 씨의 다른 동료 재소자에게서 '한 씨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뒤 K씨에게도 이런 말을 들었는지 캐물었다.

K씨가 들은 적 없다고 하자 '별건 수사'를 암시하는 말을 하며 협조를 요청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K씨는 "계속 그런 말을 들은 적 없다고 하니 검사가 '고생 좀 더 해야겠네. 가족들 생각 좀 하라'고 했다"며 "'힘든 일 생기면 연락해라, 연락 방법 알고 있지?'라는 말도 남겼다"고 말했다.

검사가 말한 '연락'은 이른바 검찰의 '빨대' 역할을 하는 수감자들을 통하라는 뜻이라고 K씨는 설명했다.

이들은 가석방 기회를 얻기 위해 검찰에 수감자 동향이나 첩보를 보고했으며 검찰로부터 수감방 교체 등 소소한 편의를 받았다고 했다.

K씨는 당시 '고생을 더 해야겠네'는 검사의 말이 또 다른 사건에 대한 '별건 수사'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그 사건에선 참고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K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사기 사건의 피의자로 조사를 받게 됐고 재판에도 넘겨졌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수차례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결국 2012년 5월 사기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K씨는 "당시 그 사건에서 참고인이었는데 증언 협조를 거부한 뒤 바로 피의자로 전환이 된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검찰 협조 거부가 별건 수사의 빌미가 됐다는 것이다.

검찰이 유리한 증언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을 회유하기도 했다고 K씨는 주장했다.

K씨는 당시 징역 2년형이 최종 확정된 상태였지만 관련 사건의 주요 물증이 위조된 정황이 뒤늦게 나와 재심을 준비 중이었다. 검찰이 이런 상황을 알고 증언을 요구하며 '재심'에 대해 언급했다는 것이다.

K씨는 "검찰이 '재심이 진행될 수 있도록 의견서 등을 도와줄 테니 증언을 해달라'고 했다"며 "당시에 유죄의 근거가 된 서류가 위조됐다는 증거가 나와 재심을 신청했는데 검찰이 이를 먼저 알고 물어본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도움이 없어도 재심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확신했던 K씨는 검찰의 협조 요청을 거부했다. 하지만 K씨의 재심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에 협조를 거부한 것이 재심 신청 기각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K씨의 주장이다.

K씨는 이런 수사 방식이 일반적인 검찰의 관행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위증 교사'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K씨는 "검사들이 거짓말을 하라고 종용하지는 않았다"라며 "검사들은 정말로 내가 그런 말을 들었을 것으로 믿고 끈질기게 묻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한 씨가 한 전 총리의 비서진에게 '고액'의 정치자금을 줬다고 말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K씨는 한씨가 통영교도소로 이감되기 전부터 한 씨에게서 "많은 액수의 돈을 한 전 총리의 비서진에 넘겨줬다"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고 했다. '액수가 많다', '적은 돈이 아니다' 등의 말을 여러 차례 했다는 것이다. 다만 정확한 액수는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K씨는 "한 씨가 한 전 총리 비서진과 매우 친한 것으로 얘기를 많이 했고 이들로부터 돈을 많이 뜯겼다는 취지로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자꾸 돈을 달라고 해서 줬는데 부탁도 안 들어주고 말뿐이라며 불만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비서진에 감정이 좋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한 전 총리에 대해서는 "종친이라서 같이 밥도 먹고 그런 얘기는 했지만, 돈을 줬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며 "한 전 총리에 대해서 서운하다거나 나쁜 얘기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혁신 기자 mrpe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