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말로 『VIDE GRENIER』는 『다락방을 비운다』는 뜻으로 지역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중고품들을 사고 파는 노천시장을 말한다.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는 벼룩시장으로도 불리는 중고품 시장이 성업중이지만 지방의 중소도시에서는 일년에 한두 번 다락방을 비우는 시장이 서면 타지역 사람들과 골동상들도 찾아온다. 간혹 값진 책자나 그림들과 골동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수년전부터 가까운 친구들이 모아두었던 사진과 편지들을 정리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차일피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어 그동안 쌓여 있던 책자들과 사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부님과 선친께서 한차례 이사만 하신데다가 남겨 놓으신 것이 의외로 많아서 정리 작업이 간단치는 않았다. ▶조부님이 남기신 자료들은 선친께서 여러 차례 정리하셔서 각종 사진이나 졸업장과 자격증 등 비교적 단촐했다. 깨알 같은 작은 글씨로 친지들의 주소를 적어놓으신 수첩은 이제 한 세기가 지났다. 그러나 선친께서 남기신 책자와 각종 자료들은 아직도 많았다. 당신께서 몇 차례 정리하셨지만 사진도 수백장이고 서적들은 더욱 많았다. 학창시절에 애독하던 일본어로 된 책자들과 광복후에도 일본 서적을 구해 읽으셔서 일어책이 의외로 많았다. ▶영문 서적들도 생전에 많이 정리를 하셨지만 버리기 아까운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서재 깊숙하게 쌓여있는 우리나라 책자들을 정리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저서들을 가까이하셨음에 다시 한번 놀랐다. 책자들을 정리하다가 대봉투에 들어있는 자필 원고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의과대학 시절 학우들과 『무형(無形)』이라는 문예지를 발간하시면서 우리말로 쓴 원고들이었다. 일제시대가 아니었으면 의사보다는 외교관이나 문필가가 되고 싶으셨다는 생전의 말씀이 실감났다. ▶내 자신의 사진과 책자 등을 정리하기는 의외로 수월했다.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몇 해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발행인을 지낸 신동호 선배가 신문사 재직시 필자가 보냈던 편지를 모아서 『신공(愼公) 서한집 29편』이라고 써서 주신 봉투가 눈에 띄었다. 입사 직후 1968년 일본 출장을 갔을 때부터 프랑스 특파원으로 나가 있을 때 그리고 신 선배가 미국 연수중에 보냈던 편지를 반 세기 동안 간직하고 있다가 필자에게 돌려준 것이다. 오랜만에 쌓인 자료를 정리하면서 선친의 일제때 한글로 쓰신 원고와 신 선배가 돌려준 필자의 편지 묶음을 보며 두 분들께 머리가 숙여졌다.

 

언론인 신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