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강화의 중요성
- 조승연 인천시의료원장-

 

 

 

 

▲ 조승연 인천시의료원장

 

세계 주목한 K-방역…의료 평가는 조심스러워 
의료진 값진 희생 이면엔 공공성 결핍된 현실

인류 위협 감염병에 맞설 무기는 '보건의료'
공공성 기본으로한 체계가 공공성을 잃을 경우
현 미국의 사태처럼 심각한 분열·차별 불러와

한국 공공의료법률 제정 20여년의 짧은 역사
국민건강 보장 어려운 공공병원 수준 유지
확충·강화야말로 보건의료의 '뉴 노멀'

 

국내 최초 코로나19 환자 발생 이후 5개월째다. 초기의 확산을 이겨내고 잘 막아내고 있는 한국의 대응을 'K-방역'이란 이름으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방역과 의료는 비슷하지만 다른 말이다. 방역은 환자를 찾아내고 감염 경로를 추적해 격리하는 과정이며, 의료는 확진환자를 치료해 사회로 복귀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메르스의 경험과 공직자의 헌신, 수준 높은 시민 의식이 방역에서 찬사를 이끌어냈지만, 한국의 의료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뛰어났다고 평가하기에는 조심스럽다. 마스크와 보호복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환자 치료에 매진한 의료진의 희생을 “갈아 넣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그악스럽게 들리지 않은 이면에는 공공성이 결핍된 한국의 의료 현실이 있다.

인류는 위협해오는 감염병에 맞서 다양한 무기를 만들어왔다. 환경을 개선하고 치료제와 예방법을 찾는 보건의료는 질병과 대적하는 인류의 무기이다.

보건의료는 공공성을 기본으로 한다. 공공성이란 사적·영리적·민간적 속성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비경합성(non-rivalry)과 비배타성(non-exclusive)을 가진다. 비경합성은 텔레비전(TV) 방송과 같이 재화가 생산된 후 다른 경제주체가 추가로 소비해도 이미 소비하고 있던 경제 주체들의 소비 가능성이 감소하지 않는 특성을 말한다. 비배타성은 공용도로와 같이 재화의 사용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경제 주체를 소비로부터 배제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특성을 말한다.

공공성은 국방, 치안, 교육, 환경, 주택과 보건의료 등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분야에 필요하다. 공공분야의 사유화는 인간 사회의 악마적 요소를 표면화한다. 사회적 양극화의 한 편에 공공성을 잃은 보건의료가 존재한다. 취약계층 의료 보장을 위한 '오바마 케어'를 극구 반대한 논리의 내면에는 계층적 차이를 부추겨 사적 이윤을 공고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백신과 치료제의 독점은 국가 간•계층 간 심각한 분열과 차별을 야기할 것이다.

팬데믹 전염병이 취약계층의 참담한 피해를 통해 숨어있던 영리적 의료의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흑인이 코로나 사망자의 70%를 차지했다는 통계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이 전체 흑인 사회를 뒤흔드는 시위로 파급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뿌리 깊은 인종차별에 기반을 둔 사회적 계층화가 건강의 결정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공공성이 약한 의료는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을 드러낸다. 공공의료가 보편적인 유럽에서조차 신자유주의가 팽배했던 20년간의 의료분야 예산 삭감으로 저소득계층과 소수자들에게 기아와 병마 중 택일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아르바이트 택배 직원, 콜센터 노동자, 개척교회 목회자들, 성적 소수자들에서 발생한 대량감염은 건강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취약한 계층의 보건의료적 불평등을 반영한다.

공공군대, 공공도로라는 표현이 생소하듯 대다수 나라에서는 보건의료 자체를 공공서비스로 본다. 유례없는 민간병원 중심의 영리적 의료제도를 가진 한국은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이 불과 20년 전에 제정됐을 정도로 일천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의료 취약계층을 치료하는 것이 공공의료라는 시혜적 개념에서 출발한 법률이 2013년이 돼서야 전 국민 대상으로 보편적 필수의료를 국가가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전부개정됐으며, 민간병원도 공공의료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돼 모든 분야에서 공공의료가 작동할 근거를 마련한 바 있다.

지금까지 중 가장 교활(?)하다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고의 큰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적은 공공병원과 예산으로 유지되는 의료제도가 질병으로부터 국민을 안심시키고 건강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강한 정규군 없이 의병을 모아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이달의 급여를 걱정하며 마스크와 고글을 눌러쓰는 의료진에게서 언제까지 최선을 요구할 수 있을까. K-방역의 위상에 걸맞도록 공공의료의 수준도 높여야 한다. 기회의 창은 드물게 오지만 쉽게 닫힌다. 공공의료 확충·강화야말로 보건의료의 '뉴 노멀'이며, 이를 이룰 절호의 기회가 왔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데 지금 새벽이 바로 저기, 저 산 아래에 도착해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 조승연 원장 약력

-현 인천시의료원 제 15대 원장

-서울대 의대 의학과 졸업

-전 가천의대 길병원 외과학 교수

-전 인천적십자병원장

-전 인천시의료원 제 13대 원장

-전 성남시의료원 초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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