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 일본 조치 부당 여론 환기
"일본과 대화 계속 지속하겠다" 협상 가능성도 열어놔

 

▲ [연합뉴스TV 제공]

 

 

 

정부가 일본의 대한국 수출 규제에 대해 결국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재개 카드를 빼 들었다.

우리 정부의 여러 노력에도 일본이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WTO 분쟁 해결 절차를 통해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불확실성을 해소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면서도 "일본과 대화를 계속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혀 협상 가능성은 일단 열어놨다.

 

◇ "일본 문제 해결 의지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수출관리 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취한 3대 품목 수출 규제와 백색 국가(수출 절차 우대국) 명단인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과 관련해 5월 말까지 일본의 입장을 밝히라고 일본에 통보했다.

일본은 그러나 전향적인 답변을 끝내 내놓지 않았다.

나승식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2일 브리핑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은 채 "일본 측 답변은 있었지만, 우리가 기대한 답변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로 지난해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을 일반포괄허가 대상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꿨다.

아울러 8월에는 한국을 자국 기업이 수출할 때 승인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일본은 수출규제 이유로 ▲ 한일 정책 대화가 열리지 않아 신뢰 관계가 훼손된 점 ▲ 재래식 무기에 전용될 수 있는 물자의 수출을 제한하는 '캐치올' 규제가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 ▲ 수출 심사·관리 조직·인력 불충분 등 세 가지를 들었다.

한국은 그동안 일본이 문제로 제기한 사안을 제도 개선 등을 통해 모두 해소했다.

나 실장은 "3개 품목의 경우 지난 11개월 동안 운영과정에서 일본이 수출규제 원인으로 지목한 안보상의 우려가 일절 발생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일본이 수출규제를 원래대로 되돌려놓지 않자, 국제기구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일본 수출 규제가 1년이 다 돼가도록 일본의 전향적인 태도를 끌어내지 못한 데 대한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산업통상자원부 나승식 무역투자실장이 2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일본 수출규제 관련 한국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2020.6.2

 

◇ WTO 절차 실효성 있나…"불법성·부당함 알리겠다"

 

WTO 분쟁 절차는 사실상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카드다.

또 다른 대안으로 거론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중단은 미국의 반대 등을 고려할 때 사실상 꺼내 들기 어려운 카드로 관측됐다.

한국은 지난해 7월 일본이 수출규제를 시작하자 "자유무역 원칙을 어겼다"면서 WTO에 곧바로 제소했다. 양자 협의를 진행하다가, 그해 11월 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하면서 제소 절차도 잠정 중단한 터다.

분쟁 해결 절차를 다시 진행하려면 본격적인 재판에 해당하는 WTO 분쟁 해결기구에 패널 설치를 요청하면 된다.

산업부는 "코로나19로 중단된 WTO 분쟁 해결기구가 재개하면 즉시 패널 설치 요청서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통상 1년 이상 걸린다. 사안에 따라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아울러 미국 등의 견제로 WTO 위상이 흔들리고 있어 WTO 제소에 대한 실효성 논란도 제기된다.

나 실장은 "WTO에 대한 최근 여러 논의를 보면 미국 쪽이 주도하고 있는데, 바꿔 생각하면 WTO 결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방증"이라며 "제소를 통해 일본 조치의 불법성과 부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조치는 글로벌 공급망에 드리워진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한편, 일본이 수출규제를 남용하지 않도록 재발방치 차원에서 추진한 면도 있다.

일본이 지난해 7월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했을 때만 해도 한국 수출은 타격을 받았다. 당시 3개 규제품목 가운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는 90% 이상이 일본산이었고, 불화수소의 일본 의존도 역시 40%가 넘었다.

그러나 일본의 수출규제는 오히려 한국에 전화위복이 됐다. 정부는 한국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했고, 업계에서도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국산화율을 빠르게 높였다.

일본도 수출 규제를 강화했지만, 수출 허가를 정상적으로 내주는 상황이다.

나 실장은 "지난해 12월 일부 품목에 대해 일본이 다소 수출규제를 완화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완화 역시 당초 3개 품목에 대한 개별허가와 다름없다. WTO 분쟁 해결 절차 재개는 일본이 한국에 대해서만, 그것도 포괄허가를 개별허가로 바꿔서 수출제한 조치를 하는 것에 대한 불법성·부당성을 입증하겠다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무역협회 문병기 수석연구원은 "WTO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유사시에 대비해 우리측 주장에 대한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면서 "WTO가 중재 기능도 있는 만큼 양자 간 조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 연구원은 "일본이 당장은 반응하지는 않겠지만, 일본도 수출규제로 인해 한국에서 물건을 못 파는 등 여러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그런 점을 고려할 때 수출규제 현안을 서로 막다른 골목으로 끌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