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성착취물…사이버 범죄
"익명에 숨은 인간 파괴행위, 반드시 잡힌다 경각심 줘야"
▲ 양근원 전 총경이 인천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양근원 전 총경이 인천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N번방 사건, 인터넷 폐해 단적으로 보여줘
사이버공간 절대 잡히지 않는다 인식 때문

네트워크, 다크웹처럼 암호화·해외에 서버
가상화폐로 받는 범죄 수익…국제협력 어려워

양 전 총경, 97년 국내 첫 사이버 수사조직 맡아
웜바이러스 해결·디지털포렌식 부서 신설 공로


해킹영장, 중대한 범죄에 사용해 암호 풀어야
우리나라 국제 사이버범죄 협약 가입해야

 

“사이버 공간에서 여성을 상대로 몹쓸 짓을 저지르는 상황을 지켜본다. 오히려 동조한다. 너도나도 범죄를 저지르고 싶다고 한다. 불법 영상까지 공유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미성년자 등 여성의 성 착취 영상을 공유하고 퍼뜨린 N번방 사건은 인터넷 발달로 인한 폐해를 단편적으로 보여줬다. 지금도 일부 그릇된 이들은 여전히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잔인한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잡히지 않는다'는 비뚤어진 인식에서 기인

대한민국 '사이버 수사'의 개척자이자, 전문가인 양근원(57) 전 총경은 사이버 공간에서 범죄가 점점 과감해지는 배경에는 '절대 잡히지 않는다'는 비뚤어진 인식 때문이라고 요약했다.

인터넷 기술이 발달하면서 다크 웹처럼 암호화된 네트워크 등 수사망을 피할 수 있는 수단이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것이다. 대부분 서버를 외국에 두고 있는데, 국제협력도 어려워 압수수색도 어렵기 때문이다. 양 총경은 수사 공조에만 6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여기에 범죄 수익을 과거처럼 현금 등 시중은행을 이용하지 않고 추적이 어려운 가상화폐로 받는 등 이 두 가지 사항이 범죄를 증폭시키는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옛날에는 틈만 나면 남의 집 들어가서 도둑질하는 좀도둑이 많았다. 지금은 거의 찾을 수 없다”며 “이는 CCTV가 곳곳에 생겨났고 검거율도 높아져 '반드시 잡힌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이유가 크다”고 말했다.

양 전 총경은 사이버 수사를 20여년간 경험한 사례를 들면서 인터넷의 익명성과 비접촉, 즉 사람을 대면하지 않기에 범죄가 더욱 악독해지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평소 사람들을 대면하면서 할 수 없는 행동도 자신을 꽁꽁 감출 수 있기에 본능과 충동대로 하는 경향이 크고 자제력도 잃는다는 견해에서다.

양 전 총경은 “강도처럼 사람들 대면하는 일은 강심장이 필요하지만, 사이버 범죄는 누구나 숨어서 할 수 있다”며 “이전에 수사를 하다 보면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 즉 화이트칼라가 범죄자인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단순 호기심에서, 불법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범죄에 가담하는 일도 있다고 했다. 90년대 후반 해커집단과 전면전을 치렀는데, 당시 주동자와 가담자를 잡고 보니 젊은 사람이 많았고 10대도 다수 있었다. 조사해보니 해킹이 불법이라는 의식을 가진 이가 없었고, 호기심에 가담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물 샐 틈 없는 수사시스템 구축 시급

양 전 총경은 잇따르는 사이버 범죄를 줄이기 위해 처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물 샐 틈 없는 사이버 수사시스템을 구축하는 길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사이버 수사시스템의 역사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상용화하기 시작했던 95년부터 사이버 인구가 급증했다. 97년에는 100만명까지 늘었다. 웹 브라우저가 발명되면서 마우스만 클릭해도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범죄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이버 범죄 사건 자체는 많이 없던 것처럼 보였다. 수사하는 조직이 없어 표면화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이런 점을 우려해 상부에 사이버 수사를 도맡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줄기차게 건의했다. 그 결과 97년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사이버 수사를 도맡는 조직이 탄생했다. 90년대 말 해킹집단 검거를 시작으로 2000년 방송국 등 국가 주요기관 웜바이러스 공격 등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했다. 음성적으로 자행된 범죄를 낱낱이 파헤쳐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일이었다. 이와 함께 전문화하는 사이버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력과 국제협력도 뒷받침했다. 그의 건의로 2004년 디지털 포렌식 부서가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2000년부터는 해외 80여 개국과 사이버 수사에 대한 국제교류를 매년 한국에서 하고 있다.

각종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인터넷 성범죄를 감시하는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사이버영장 등 법적 토대 강화해야

양 전 총경은 사이버 수사에 대한 기반은 구축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법적 토대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독일은 사이버를 이용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를 경우에만 한해 사이버 감청 등 기술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해킹 영장이 있다. 범죄자들이 추적을 피하기 위한 암호화 등을 뚫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현재 N번방 사건, 다크 웹, 암호화 통신 등은 수사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 보니 이를 믿고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활개를 칠 수밖에 없다는 견해다.

미국과 유럽 등 65개국이 사이버 범죄 협약에 가입돼 있어 아동음란물 등 중대한 사건에 대해서만 범죄자 PC해킹 등 수사규정을 표준 모델로 만들었는데 한국은 아직 가입되지 않았다.

양 전 총경은 “극히 제한적으로 중대한 범죄는 엄격한 법적 절차를 정해 수사할 마지노선을 만들어야 한다”며 “범죄자는 어떤 경우에도 잡힌다는 경각심을 줘야만 인터넷 성범죄를 예방하고 근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근원 전 총경은]

사이버 수사의 아버지

 

▲ 양근원 전 총경의 젊은 시절 모습.
▲ 양근원 전 총경의 젊은 시절 모습.
▲ 97년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창설한 컴퓨터범죄수사팀. 이 팀은 양근원 전 총경을 대장과 10명으로 구성됐다.
▲ 97년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창설한 컴퓨터범죄수사팀. 이 팀은 양근원 전 총경을 대장과 10명으로 구성됐다.

 

양근원 전 총경은 '대한민국 사이버 수사의 역사'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지난해 퇴직했지만, 경찰 내부에서는 아직도 그를 '사이버 수사의 아버지'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경찰대 2기로 국내에 사이버 수사라는 개념이 자리 잡기 이전인 94년부터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를 수사해 왔다.

그는 경찰대에 재학시절인 1980년대 우연히 286인 '애플2'를 보고 컴퓨터에 관심을 가졌다. 부인 몰래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를 사 연구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판례나 사건을 검색할 수 있는 '법화산'이란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모두 독학으로 이뤄낸 결과다.

“국가 혼란을 막기 위한 사이버 수사 종합적인 기구가 필요하다.”

국무총리가 2000년 사건 해결 공로를 인정하기 위해 경찰청을 찾았을 때 계획돼 있지 않았던 발표를 하면서 그가 과감하게 건의한 말이다.

그래서인지 94년 경찰청 형사국에서 신종범죄를 담당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95∼97년 인터넷이 상용화하면서 사이버 공간에서 범죄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했고, 상부에 사이버수사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97년 양 전 총경을 대장으로 하는 10명 규모의 컴퓨터범죄수사팀이 창설됐다. 경찰이 처음으로 사이버 수사에 나선 것이다. 철저하게 대비했던 그는 주요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했다. 그는 2000년 방송국 등 국가 주요기관 해킹 사건 등을 해결하면서 사이버 수사는 전문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느꼈다.

경찰 내 그의 족적은 또렷하다. 지방경찰청과 경찰서 사이버수사대, 국제협력, 디지털포렌식, 사이버수사관 사이버특채 모두 양 전 총경이 열정적으로 건의해 만들어 낸 작품이다. 그는 2017년 사이버 치안 확립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