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 첫 공판서 '2점' 압수영장 발부
국과수 감정서 사실 여부 확인 필요
진범 논란 끝날 듯 … 증인 채택 보류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윤모(53)씨를 20년간 옥살이하게 한 결정적 증거인 '국과수 감정서'의 사실 여부가 밝혀진다.

수원지법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는 19일 '진범 논란'을 빚은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첫 공판에서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에 보관 중인 체모 2점에 대한 압수영장을 발부했다.

해당 체모는 8차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것으로, 당시 국과수 감정서는 범인으로 지목된 윤씨의 체모라는 결과를 내놨다. 윤씨는 2·3심 모두 혐의가 인정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0여년을 복역한 후 2009년 가석방됐다.

그러나 이춘재가 지난해 11월 경찰 수사 과정에서 8차 사건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하면서 국과수 감정서의 사실 여부가 논란에 휩싸였다.

재판부는 “종전(과거) 재판에서도 체모 감정이 유력한 증거였고, 재심 청구인인 피고인 측의 주장을 고려하면 체모에 대한 감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재판부의 이번 영장 발부 결정에 따라 8차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의 주인이 밝혀질 전망이다. 이춘재의 체모와 일치할 것으로 판명되면 진범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앞서 2017~2018년쯤 국가기록원에 8차 사건 감정 관련 기록물을 이관했다. 기록물의 첨부물에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 2점이 테이프로 붙여진 상태로 30년 넘게 보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측과 재심 청구인 측은 이날 공판에서 모두 국과수 감정서의 신빙성에 의구심을 던졌다.

검찰 측은 재심 청구인(윤씨)에 대한 유죄 증거로 사용된 1989년 7월 24일자 감정서에 기재된 두 가지 방사성 동위원소의 값이 모두 감정서가 밝히는 '현장 발견 체모', '재심 청구인의 체모'의 값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현장 발견 체모로 둔갑한 '증1'은 분석 기계의 정확도 측정을 위한 '스탠다드 값'이며, 재심 청구인의 것으로 둔갑한 '증2'는 제3자의 체모라는 것이다.

검찰 측은 “국과수 감정서에 중대한 오류가 있으며, 재판 과정에서 재심 청구인이 진범이 맞는지 밝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재심 청구인 측 박준영 변호사는 “국가기록원 체모 감정 절차를 통해 윤씨가 범인이 아님을 밝힐 수 있다. 체모 감정 결과 이춘재의 것이라면 이춘재의 범인이 확실하고, 만약 윤씨의 것이라면 체모를 바꿔치기했다고 연결 지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재판부는 체모에 대한 압수영장을 발부하면서 이춘재에 대한 증인 채택 여부는 보류했다. 다음 재판은 내달 15일 열린다.

이춘재 8차 사건은 지난 1988년 9월16일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모씨 집에서 13세 딸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지칭한다. 이듬해 윤씨는 범인으로 지목, 검거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2·3심에서 “경찰의 강압 수사로 인해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국과수 감정서 등의 영향으로 2·3심 재판부 모두 윤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윤씨는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됐으며,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