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을 출판한 것은 퍼스널 컴퓨터의 태동기인 1980년이다. 인터넷 네트워크도 없던 시대에 그는 가정 마다 PC가 보급이 되고 사람들은 집에서 업무를 보게 될 것이라 예언했다. 대부분 적중했지만 재택근무는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도 그리 일반화되지 못했다. 클라우스 슈밥은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4차 산업 시대가 오면 산업 분야뿐 아니라 노동 시장과 사회 문화, 정치 시스템까지 달라질 것이라 예측했다. 정보기술 분야는 예측대로 변하고 있지만 많은 후속 분야들이 격론과 공방 속에 대치 상황이다. 정보 기술의 편리함은 좋지만 기존 삶의 방식은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심리적 장벽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어떤 변화가 올지 모르는 미래에 섣불리 발을 내딛으려 하지 않았다. 이번 COVID-19의 실존적 공포는 사람들이 회피했던 모든 것들을 시험대에 올려 놓았다. 가장 파격적인 것은 학생들의 등교 중단과 온라인 재택 교육이다. 이 전무후무한 전국적 실험은 많은 문제의 발생에도 불구하고 재택 교육이 해볼 만한 선택지라는 것을 드러냈다. 초·중·고는 별개라 해도, 대학 교육은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한 학기 전면 온라인 교육을 겪어 본 학생들이 더 이상 오프라인 강의에 종속되려 할 리 없다. 역외 최고 전문가들의 화상 강의 선택권을 요구하고, 미네르바 스쿨과 같은 캠퍼스 없는 혁신 대학을 기준점으로 시스템 개혁과 수업료 재조정을 요구한다면 무슨 명분으로 거부할 것인가?

회의 문화도 변했다. 필자의 병원은 이번 사태로 화상회의가 촉진되고 전에 없이 해외 의료기관, 국제기구와의 소통이 증가되었다. 교수들은 외부 회의를 화상으로 대치했고, 학회는 온라인으로 중계되었다. 이동하고 모이는 전통 방식이 상당한 낭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생활도 달라졌다. 밤에 주문한 식료품은 새벽에 현관 앞에 배달되어 있고, 온라인 주문 물품들은 택배사에서 조용히 놓고 간다. 공연과 영화는 유튜브와 스트리밍 서비스로 즐긴다. 스포츠는 관중 없이 치러진다. 밖에 나가고 싶지만 옛날만큼은 아니다. 이 편리함의 대가로 많은 업종과 일자리가 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우울하다.

방역 당국의 감염자 동선 파악과 대처는 경이롭지만, 개인의 정보 추적과 노출이 얼마나 쉬운 지도 알게 되었다. 중국의 방법은 등골이 서늘할 정도다. 버스에서 노점상까지 QR코드로 모든 것이 결제되는 중국은 진료 기록, 해외 방문, 발열 데이터를 시민들의 QR 코드에 넣고 통제한다. 격리 권고자들은 QR코드에 라벨이 붙어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다. COVID-19 사태로 탄력을 받을 캐시리스(cashless) 경제에 개인 정보는 유리처럼 투명해진다. 정보는 힘이다. 우리는 그 힘을 정부와 기업에 더 많이 넘겨줘야 할 것 같다. 정부의 격리 정책과 사람들의 소비 중지와 관망에 서비스, 항공, 관광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조업 정지와 2008년 교역 대붕괴에 필적하는 공급 차질은 생산업을 암흑 속으로 몰아 놓고 있다. 기업은 고정비용을 감당할 수 없고 자영업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 이제 사람들은 무급 휴직에도 저항하지 못한다. 경제 침체 후폭풍이 예상 외로 심하면 '주 52시간제' 논의가 '노동시간 단축제도(kurzarbeit)'으로 바뀐다 해도 거부 못할 지 모른다. '재택근무'는 육아 보장과 질 높은 삶을 갈망하는 노동자들의 꿈이지만, 고용 유연화와 비용 감축이 지상 과제인 기업에게도 매력적이다. COVID-19 사태는 양자에 테스트해 볼 기회를 주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이번에 얻은 경험은 가까운 미래에 적용될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COVID-19 사태는 4차 산업 사회의 입구에서 머뭇거리던 사람들의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렸다. 의료인들은 COVID-19가 궁극적으로 통제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두려운 것은 그것이 가져올 강력하고, 장기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미래의 변화이다. 게다가 세계 경제 전문가들이 일관되게 포스트 코로나의 경제 침체를 단단히 준비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방호복을 벗고 돌아 갈 곳이 유토피아 일지 디스토피아 일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마음을 단단히 하고 두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송준호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