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우리나라 근대건축 문화의 보고(寶庫)였다. '보고'였지만, 지금은 그렇게 말할 처지가 못된다. 그동안 정부, 인천시, 건물주들의 무지와 횡포로 빼어난 건축물들이 철거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같은 비문화적 근대건축물 파괴는 계속 행해지고 있다. 인천측후소, 애경유지공업사에 이어 최근엔 신흥동의 옛 '오쿠다(奧田)정미소' 건물이 철거됐다.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등 20개 시민단체가 '인천의 근대산업_노동유산'이라며 건축물 철거에 반대하고 나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난해에 실시한 '인천근대건축자산 기초조사'에서는 '우수 건축자산'이라 지정해 놓고, 올해에는 서슴없이 건축물 철거를 전제로 한 개발허가를 내 준 것이 인천시였다. 문화예술 행정의 파행이 저질러진 것이다.

인천시와 중구청은 또 현행법을 핑계 삼아 수인역 부근과 인천항 1_8부두 인근의 고밀도 오피스텔 난립에도 수수방관이다. 이를 심의하는 문화재위원회와 도시계획위원회 위원들도 암묵적인 거수기 노릇을 해 준 셈이다. 그것을 막는 데 역할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보루인 위원회조차 시에 번번이 손을 들어준 것은 좌시할 수 없는 현실적 사안이 됐다.

전문가 집단인 두 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그간 세워진 것이 인천항의 전망을 가로막고 있는 '하버파크 호텔'이고, 사진엽서 몇 장을 토대로 복원했다며 부실하기 짝이 없는 짝퉁 근대건축물로 문을 연 것이 '대불호텔'이다. 더불어 마땅히 보존해야 할 건축물들을 부숴버리거나 방치하게 한 예는 한두 건이 아니다. 행정의 부실한 민낯을 보인 난맥상들이다

'인천우체국'의 예는 그런 면에서 상징적이다. 정부 우정사업본부는 우리나라 우편사에서의 인천의 위치를 전혀 모른 채 수수방관이고, 인천시 역시 관심 밖인 데다가 중구청은 뭐가 뭔지 상황 파악도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지 않고서야 덕지덕지 칠한 벽면의 칠이 수년째 흉하게 터져 너덜거리고, 방수천을 뒤집어씌운 지붕을 그렇게 방치할 수는 없다.

외양뿐이 아니다. 정부는 어느 날 인천시나 인천 시민들에게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제멋대로 '인천우체국'의 이름마저 바꿔버렸다. '인천중동우체국'이란다. 하도 어이가 없어 필자가 당시 인천우체국장에게 이의 부당성을 항의했더니 이런저런 관료적 변명만 늘어놓았다. 말인즉 인천의 '중구'와 '동구'를 관할하는 6급 우체국으로 강등(?)됐다는 얘기였다.

우정사업본부는 우리가 스스로 우편사업을 전개하겠다며 우정총국 인천분국을 우리나라 최초로 연 근대의 역사성을 망각하고, 오로지 장삿속의 실익만 따져 2003년 '인천우체국'을 연수구로 이전해 버렸다. 역사적으로나 행정서비스 차원에서나 그럴 수 없는 일인데 그들은 그렇게 해 버렸고, 이번엔 안전 점검을 이유로 '중동우체국'을 신흥동으로 옮겼다.

건물이 'D급'으로 판정날 때까지 우정사업본부, 인천시, 중구청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과 2003년 4월 우정사업본부가 실행한 보수작업의 수준이 어땠길래 건물 붕괴를 우려해야 할 처지라니 딱하기만 하다. 12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우체국이 감독국의 자격마저 빼앗긴 채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행정의 행방이 묘연해 보인다. 그래서 지역사회 일각에서는 문화살리기 방안의 하나로 시가 이를 사서 '한국우편사박물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인천만이 내세울 수 있는 역사적 기득권과 유산을 담아내자는 양안이었다. 그런데 아직 감감 무소식인데다 건축물 헐리는 소리만 자옥하니 그러다가 인천우체국마저 헐자고 어느 건축업자가 덤비면 어찌될 것인가 걱정하게도 된다.

건축물은 어느 시대나 당대의 문화예술을 담아내는 역사의 그릇이다. 그런데 그를 오로지 경제적 득실에 따라 부수거나 근거도 없는 엉터리 복원사업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도시의 흉물이 될 건물들을 양산하는 행정은 이제 불식돼야 한다. 문화재과, 문화콘텐츠과, 문화재위원회, 도시계획위원회는 차제에 업무의 엄중함을 재인식해야겠다.

 

주필 조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