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 스승으로 모신 승려
진각 행적 새긴 '진각국사탑비'

영조 글씨 모은 '읍궁진장첩'
사언시고 등 주로 노년기 필적

인조반정 공신 '박유명 초상'

탕평책 핵심인물 '채제공 초상'
그림속 정조 하사 향낭도 보존

박태유 명필 담은 '백석유묵첩'
당나라 달필 회소 서풍 연상돼

정도전 편찬 법전 '조선경국전'
조선 기본법전 모체 중요자료


'고려부터 조선까지' 임금, 문관, 무관, 승려, 지위 여하를 막론한 역사적 기록과 흔적들을 수원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출판문화와 서체의 형태 등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수원의 문화재 사료들은 역사적 보존가치가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보물 도시' 수원의 두 번째 보물지도를 소개한다.

 

#고려의 국사(國事)를 본 승려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보물 제14호]

소재지: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13-1번지

지정일: 1963년 1월21일

 

고려의 국사(國師)의 지위에 오른 승려인 진각국사의 행적을 알리는 탑비로 창성사 터에 있다. 직사각형의 받침 위에 비몸돌을 세운 다음 지붕돌을 올려놓았다. 비문을 새긴 비몸돌은 마멸이 심하고 오른쪽 모서리가 떨어져 나갔으며, 지붕돌은 경사면이 완만하다.

비문에는 진각국사가 13세에 입문한 뒤 여러 절을 다니며 수행하고 부석사(浮石寺) 등 소백산에서 76세에 입적하기까지의 행적이 실려있다. 입적한 다음 해인 우왕 12년(1386) 광교산 창성사 경내에 이 비가 세워졌다.

간략화된 고려 후기 석비의 형식을 보이며, 칠곡 선봉사 대각국사비(보물 제251호)와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보물 제229호),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 등과 비교할 만하다. 글씨는 고려 전기의 힘있는 풍모가 사라지고 투박해지면서, 고려 후기의 글씨가 퇴보하였음을 보여준다. 비문은 승려인 혜잠의 글씨를 새겼다.

 

#영조가 보내는 메시지 '영조어필 읍궁진장첩'

[보물 제1631-3호]

소재지: 수원시 영통구 창룡대로 265, 수원박물관(이의동,수원박물관)

지정일: 2010년 1월4일

 

영조어필-읍궁진장첩은 영조(英祖, 1694~1776)의 여러 어필을 모은 것이다. 겉표지에 '영조어필 읍궁진장(英廟御筆 泣弓珍藏)'이라 쓰여 있는데, 읍궁이 송시열의 은거지였던 괴산군 화양구곡의 제3곡 읍궁암(泣弓巖)과 어떤 관계인지는 알기 어렵다.

서첩 앞쪽에 '1761년 정월 16일에 내의원에 답한다'는 부전지(附箋紙, 어떤 서류에 간단한 의견을 적어 지시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가 있는 비답(批答, 국왕이 직접 처결하는 형식의 하답)을 비롯해 사언시고(四言詩稿) 등이 실려있다.

특히 사언시고 중에 1770년(영조 46) 7월11일에 쓴 '서시옥당(書示玉堂)'은 충자(정조)와 옥당(홍문관) 관원에게 내린 것으로 임하필기(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의 수록류를 모아 엮은 책)에 관련 내용이 보인다.

이 어필첩은 영조어필을 모은 몇몇 서첩 가운데 수록 필적이 정선돼 있고, 영조 노년인 1761년, 1765년, 1770년의 연대가 있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해 어필 자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17세기 공신상의 전형적인 양식 '박유명 초상'

[보물 제1489호]

소재지: 수원시 영통구 창룡대로265 수원박물관

지정일: 2006년 12월29일

 

박유명(朴惟明 1582∼1640)은 1620년(광해군 12) 무과에 급제하고, 1623년에 인조반정에 참여하면서 정사공신(靖社功臣, 조선시대 인조반정의 공으로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3등에 책록되고 그 뒤 당상선전관(堂上宣傳官)을 거쳐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했다.

'박유명 초상'은 낮은 오사모를 쓰고 과장된 둥근 어깨를 하고 있으며 단령(조선말기까지 모든 관원의 평소 집무복)이 뒤로 뾰족하게 뻗친 모양 등을 통해 17세기 공신도상(국가나 왕실을 위해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던 그림)의 형상을 잘 보여준다.

'박유명 초상'은 17세기 공신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또한 호랑이 흉배(왕과 관리들의 품계를 구별하기 위해 상복(常服)에 부착하던 표식)로 보아 무관 초상화로서 추정된다.

그런데 이모본(원본을 보고 다시 그린 그림)의 경우는 원본과 양식적으로 상이하며 작품의 수준도 다소 떨어지므로 원본 1점만을 지정했다.

 

#1등 공신 '채제공 초상'

-시복본(초상1점, 초본3점, 향낭1점, 함1점)

[보물 제1477-1호]

소재지: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1-0 (매향동) 수원화성박물관

지정일: 2006년 12월29일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사도세자의 신원 등 자기 정파의 주장을 충실히 지키면서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 인물인 '채제공'의 초상화이다.

수원시 소장 시복본(1792년作 입시를 할 때나 공무를 볼 때 관원들이 입던 옷)은 사모에 관대를 한 옅은 분홍색의 관복 차림에 손부채와 향낭을 들고 화문석에 편하게 앉은 전신 좌상이다. 우측 상단에 채제공이 직접 쓴 자찬문이 있다.

시의 내용대로 정조로부터 부채와 향낭을 선물 받은 기념을 표시하기 위해서인 듯 손을 노출해 부채와 향낭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연출됐다. 수원시에 함께 소장된 유지 초본 3점 또한 중요한 자료이며 향낭도 함께 남아 있다.

 

#글씨 학습의 정석 '박태유 필적 백석유묵첩'

[보물제1675호]

소재지: 수원시 영통구 창룡대로 265, 수원박물관(이의동,수원역사박물관)

지정일: 2010년 10월25일

 

'박태유 필적 백석유묵첩'은 17세기 후반의 문신·명필 박태유(1648~1696)의 필적으로 다양한 크기에 여러 서체가 쓰여 있다. 해서·행초·광초·예서·행서 등 서체의 종류별로 실려있으며 그중 에서는 소해(小楷)·중해(中楷)·대자서(大字書)로 크기별로 다양하다.

특히 칠언배율(한시에서 한 구가 칠언으로 된 배율)의 시를 중자 해서로 쓴 글씨는 그가 안진경(중국 당나라 서예가, 박력속에 균제미가 담긴 서체가 특징) 해서풍을 적극 가미시켰음을 보여준다.

또 행초를 섞어 쓴 칠언절구는 아버지 박세당의 서풍을 따랐는데 그 바탕은 안진경의 행초 필적에 가깝다. 또 한 면에 두 글자씩 대자 초서로 쓴 '사지격절(辭旨激切)'·'이식현오(理識玄奧)'는 광초(狂草)의 대가 당나라 회소의 서풍을 연상하게 한다.

이밖에 예서로 쓴 '서유육의(書有六義)'는 한자에 관한 기본개념인 육서(六書 한자를 만들고 실제로 응용하는 여서가지의 원칙)란 점에서 이채롭다.

 

#정도전의 조선 '조선경국전'

[보물제1924호]

소재지: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1 (매향동, 수원화성박물관)

지정일: 2016년 11월16일

 

'조선경국전'은 고려말 조선 초의 문신이며 학자인 정도전이 조선건국 초기에 국가 경영을 위한 기본적인 통치전범(統治典範)을 마련하기 위해 '주례(周禮, 유교의 경전)'의 '육전체제(六典體制.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를 바탕으로 조선의 실정에 적합하게 편찬한 법전서이다.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은 비록 개인의 사찬(私撰,개인의 편찬물)이기는 하지만, 그가 조선건국의 중심에 있었고, 실제로 조선건국의 이념을 창안한 실질적 책임자였다는 점에서 그의 이 저작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이 책이 토대가 된 '경제육전(經濟六典)', '육전등록(六典謄錄)'등 법전의 편찬단계를 거쳐서 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의 편찬에 모체가 되었다는 점과, 조선전기의 간본으로는 이 책이 유일한 책이라는 점에서 도서출판과 법전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자료·사진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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