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1일자 로동신문에는 신년사가 없다. 2012년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처음이다. 대신 작년 12월 말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과를 게재했다. 최고지도자의 육성으로 발표하는 신년사는 북한의 분야별 정책방향을 큰 틀에서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그런데 왜 올해 신년사를 생략했을까?

김정은 위원장은 전원회의 보고에서 올해 정세를 북미관계 교착국면의 장기화에 따른 '자력갱생 대 제재의 대결'로 규정했다. 그리고 자력갱생에 기초한'정면돌파전'을 시대 전략으로 제시했다. 비핵화 협상의 장기화와 제재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체 기술과 자원을 활용한 자력갱생을 경제건설의 기본원칙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조건부 비핵화 입장에서 단계적 동시병행 비핵화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선(先) 평화체제 구축을 새로운 북미협상 카드로 제시했다. 하노이회담에서 요구한 제재 완화에서 한 발 더 나가 비핵화 셈법을 높인 것이다. 제재는 자신들의 힘으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결할 테니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평화체제를 올려놓자는 것이다. 어차피 미국은 올해 11월 3일 치러질 대선으로 자신과 마주 앉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도 깔려 있다. 북한의 제재 장기화 대비는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각오한 것이리라. 제재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한 최고지도자의 각오를 당 중앙위원회의 총의 형식으로 밝혀 북한의 의지를 보다 강력하게 대내외에 표현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문제는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협력에 관한 언급도 안 보인다는 것이다. 아니, 작년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6월부터 북한은 강경한 대남 비난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미국과 대북제재 눈치를 보는 남한과의 협력을 더는 기대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불만이 읽히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는 돼지열병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방역, 보건.의료분야 협력을 추진하겠단다. 통일부는 연초에 교류협력과를 교류협력실로 확대 개편하고 남북접경협력과를 신설했다. 그러나 북한의 호응은 오리무중이다.

지난 몇 달간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빼앗아 갔듯이 지난 1년간 남북관계는 친구 간 일상 같은 남과 북의 만남도 빼앗아 갔다. 그렇다고 어렵사리 잡은 북한의 손을 이대로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정부는 정부대로 인천은 인천대로 남북관계 변화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남북이 맞잡은 손을 더욱 꼭 쥐기 위해 목이 말라야 우물을 파는 갈이천정(渴而穿井)의 우를 범하지 말고 대비하고 준비하자. 국민과 정부 그리고 인천시는 통일은 갑작스럽게 오는'사건'이 아니라 하나의'과정'임을 다시금 가슴에 새기자. 특히 인천은 평소 평화도시 인천 조성을 위해 필요한 기본역량이 무엇인지 능동적으로 발굴하고 축적하고 강화해야 한다. 그래서 남북협력의 문이 열릴 때, 주저 없이 그동안 준비한 방안을 즉시 실천에 옮겨 결실을 보자.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었던 남북교역은 2010년 5.24 조치로 개성공단은 2016년 2월 전면 중단되었다.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간 남북협력의 시계가 멈춰서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원상복귀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임을 명심하자.

 

남근우 인천연구원 평화도시연구단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