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공서_은행 등 공공기관이나 민간단체에 가면 서류 작성 요령을 설명하는 예시문에 대개 '홍길동'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1950년대부터 그러했다고 하니 우리나라 대표 이름으로 간주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그러면 많고 많은 이름 중에 하필 홍길동인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는데 똑부러지게 설명하는 사람이나 유래는 없다.

하지만 대략 두 가지의 추론이 있다. 첫째는 각종 공문서_사문서를 발급받거나 기관을 방문한 목적을 위해 써야 하는 서류 양식의 본보기이기에 사람들의 귀에 익숙하고 발음하기도 좋은 홍길동이 '대표 국민'으로 인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널리 알려진 고전소설인 '홍길동전'에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홍길동이 소설의 주인공이어서 실존 인물로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담없이 사용했다는 추정이다. 만일 사망신고서 같은 서류에 다른 이름을 예로 적어 놓으면, 해당 이름을 가진 사람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므로 홍길동이라는 소설 속 인물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소설에 등장하는 홍길동은 어떠한가. “홍길동은 총명했으나 서자라는 이유로 과거시험을 볼 수 없었다. 집을 떠난 홍길동은 도적의 우두머리가 돼 신출귀몰한 방식으로 못된 벼슬아치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의적' 이미지가 강하다. 이러한 측면이 국민들에게 호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사(正史)에 나타난 홍길동은 기존 인식과는 전혀 다르다. 정확성과 공정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조선왕조실록에는 “홍길동을 잡았다 하니 백성을 위해 해독을 제거하는 일에 이보다 큰 것이 없다. 포악한 무리끼리 작당해 백성들에게 큰 해를 끼쳤으니 사람들마다 분개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게 맞다면 우리는 정식 역사를 무시하고 스스로 '흉악한 도둑'을 자처한 셈이 된다. 또 공공기관은 민폐의 대명사였던 홍길동을 민원서류에 등장시켰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홍길동 캐릭터를 선점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였던 전남 장성군과 강원도 강릉시는 머쓱해질 것이다.

임꺽정의 경우에도 비슷한 현상이 빚어진다. 소설_드라마_영화에서는 백성을 도운 영웅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역사에는 백성을 괴롭힌 흉도에 불과하다고 기록돼 있다. “임꺽정은 밀고한 사람이 사는 마을 전체를 도륙할 정도로 잔혹했다”는 사료도 있다.

하지만 소설이 맞든 역사서가 맞든 과도한 문제의식을 가질 계제는 못된다고 생각한다. 홍길동이란 이름은 서류 양식에서 단순 예시에 불과한 데다, 어찌됐든 70년간 간단명료함으로 국민들에게 편리를 제공한 공로(?)가 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