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인천 연수구)에는 여러 개의 코스가 있다. 옥련동 중턱에 자리잡은 호불사 쪽에서 정상으로 가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절 옆에 있는 533개의 나무계단 기둥에는 30여개의 글귀가 적혀 있다. 5~6년 전에 누군가가 설치해 놓은 것인데, 글씨가 커 자연스레 눈이 가기 마련이다. 다양한 문구 중에서도 유달리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넌 잘하고 있어!', `걱정말아요 힘내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세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밑에 있는 것부터 순서대로 나열한 것인데 그런대로 맥락이 이어진다.

수년 전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었을 때부터 글들을 보면서 산을 올랐는데, 이제는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기에 이르렀다. `넌 잘하고 있어!'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라는 격려의 메시지다. 빡빡한 현실에서 남이 나에게 해주지 않는다면 내 스스로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이다. 명상가들이 흔히 하는 `내 마인드가 나를 만든다'는 말과 상통한다. `걱정말아요 힘내요'는 “곧 지나갈 순간들을 너무 두려워하며 마음쓰지 말고 힘내라”로 해석하면 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세요'는 역설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된다. `피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서 어떻게 감히 즐기려는 마음이 들겠는가. 현실에 얽매이지 말고 좋은 생각으로 돌리라는 얘기일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성인만이 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해보니 불가능하지 않다. 차원이 조금 다르지만, 운동이든 문예든 공부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못 당한다는 말이 있다.

`열심히'는 장기간 지속되면 한계를 드러낼 수 있지만 `즐기기'는 그런 게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인생은 돌고 도니 지금의 힘듦에 머물지 말고 `다 잘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작금의 코로나 사태와도 연관지을 수 있다. 하루 확진자가 한자리 수로 줄어들고 생활방역 체계로 들어섰다. 방심은 금물이지만 시민들은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고 서서히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

무력감과 공포 대신 당장의 생활현장에서 기본을 지키고 일상을 굳건하게 유지하는 자세가 국가 차원의 방역과 맞물려 그날이 더 일찍 올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선 중국인들의 구호는 간단했다. “좀더 버팁시다.” 최근 연수경찰서 시민연합회가 청량산 둘레길에 어러 가지 표어를 내걸었는데 그 중 하나. “내 기분은 내가 정한다. 오늘의 기분은 `행복'으로 한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