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 병든다는 것은 절대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병들었을 때 지지해 주는, 다시 말해 몸을 맡길 수 있는 도시와 나라가 있다. 병자는 관심을 필요로 하고 무엇인가에 의지하고 싶어 한다.”(카뮈, `페스트', 문학동네)

오늘 세계는 코로나19와 힘겨운 전쟁 중이다. 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대전의 최전선은 국경과 계급과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전 인류가 대상이다. 각국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마스크 한 장으로 적과 싸우다가 명분도 없이 죽어간다. 사망자는 계속 늘고, 시체 처리마저 여의치 않게 되자 집단 매장이 나치 수용소의 그것처럼 일상화 됐다.

팬데믹은 가혹한 현실이 됐다. 4차 산업의 장밋빛 판타지에 취해 있던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마스크와 산소 호흡기 하나 제때 공급하지 못한 채 어이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처연하게 목도하게 됐다.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됐다고 느꼈고, 선진·후진국 할 것 없이 저마다 서둘러 나라의 빗장을 걸어 잠갔다. 국가 간에 `닫아걸기'를 행한 것이다.

이같은 개인 간의 `거리두기'와 국가 간의 `닫아걸기'는 시대적 작동 기제의 하나였던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세기의 신기루로 만들었다. 분업의 국제화가 여기저기서 삐걱대고, 각국은 주저 없이 제조업을 경시했던 지난날의 경제를 되돌아보며 자급자족 단위로 회귀하려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우리도 과거를 반추하는 계기를 갖게 됐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성찰이다. 4월 29일 현재 미국의 사망자가 월남전 전사자보다 많은 5만9000여명을 넘어서고 있고, 마침내 남아프리카에까지 번지면서 이번 가을 제2차 대유행이 남반구를 중심으로 휩쓸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CNN의 전문가는 전한다. 일본도 사망자와 확진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추세를 가져온 요인은 의료보험 제도의 안착에 있었다는 것이 의료계의 견해이다.

더불어 수준 높은 진료 서비스, 사스(SARS) 이후 갖춘 상시적인 비상의료체계, 사재기 등에 나서지 않은 국민의 능동적 대처 등이 꼽힌다. 너나없이 유럽의 복지제도와 무상진료를 선망했던 우리가 그에 뒤지지 않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한동안 젊은이들이 유행어처럼 말해 왔던 `헬 조선'의 `헬'이 사라지게 되리라는 것도 전망하게 된다. 자학적 역사관에 매여 `과거'와 전쟁을 벌이면서 세계의 인권과 경제의 실상은 거의 모른 채 우리를 `소국(小國)'이라고 해 왔던 인식도 고쳐질 것 같다. 인구 5000만에 GDP 3만 달러가 넘는 나라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10여개 국도 안된다.

소득 불평등 역시 매스미디어가 때도 없이 부르짖는 것처럼 `양극화'는 아니다. 자동차 공장의 생산라인 직원이나 정유회사 직원의 평균 연봉이 8000여 만원을 상회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일본 토요타 직원의 평균 연봉이 7000여 만원이고, 미국 디트로이트 지역의 자동차 공장 노동자는 이보다도 더 적다는 것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세계 10대 무역국'의 위상도 대개는 실감하지 못한다. 필자가 1950년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우리 나라의 GDP는 100달러가 안 됐고, 필리핀을 선진국으로 알았다. 인천 출신인 김활란 박사가 `막사이사이 상'을 받았을 때 KBS 중앙방송국이 하루 종일 이를 자랑스럽게 전하던 일이 새삼 기억난다. 그간 해외 출장으로 다양한 상점을 가 봤다.

유년시절 세계 최고로서의 `U.S.A.' 그 `미제(美製)'만을 알고 살았던 필자에게 그곳은 `감동'이자 `축복'이었다.

호주 시드니의 전자전문매장 `JB FiFl'도 마찬가지였다. 제니스, 모토로라, 제너럴 일렉트릭, 파나소닉, 소니, 필립스 등을 화려하게 압도하고 있는 삼성, LG 등은 생전에 꿈도 꾸지 못했던 현실로써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유년의 하늘에 우상처럼 드높이 휘날렸던 `UN 기'와 뱀 문양 마크로 기억되는 WHO 등 국제기구를 무색하게 만든 것도 코로나19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남들이 100여 년 넘게 피를 흘리며 성취해 온 산업화와 민주화를 세계 최단기간에 이뤘다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업계가 미리 준비했던 진단 키트만이 자랑거리가 아니다.

어쨌든, 우리는 이제 코로나19 이전의 시대를 졸업할 때가 됐다. 가산제 전제주의 국가 때인 19세기의 패착에 연연할 것도 아니다. 과거와 싸우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앞날에 우리가 겨레와 인류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자. 자학적 역사관은 역사적 사디스트들의 병인 것이다. `헬'은 대한민국 밖에 있었음을 인정하자.

 

주필 조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