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으나 노동계와 정치권에서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진행된 대국민 사과를 통해 "삼성이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법과 윤리를 엄격하지 준수하지 못해 국민께 실망과 심려를 끼쳤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데도 부족함 있었고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면서 "이 모든 것은 저희의 부족함 때문이고 저의 잘못"이라며 사과했다.

경영권 승계 문제와 관련한 뇌물 혐의 재판 사실에 대해 이 부회장은 "그동안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 많은 질책을 받아 왔다"며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이 부회장은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선언했다.

이 부회장은 노사 문제와 관련해서도 사과했다.

그는 "삼성의 노사 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건으로 많은 임직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반성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에 대해 정치권과 노동계에서는 진정성을 쉽게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분위기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논평을 통해 "지금 삼성에 필요한 것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실천"이라고 밝혔다.

그 동안 삼성측이 말로만 대국민 사과를 반복하고 노동조합을 탄압한데 대한 따른 불신감을 드러낸 것이다. 삼성은 지난해 지난해 12월에는 노조 와해 혐의로 삼성전자 경영진이 유죄 판결을 받자 사과문을 내면서 무노조 경영을 사실상 포기했으나 삼성그룹 내 노동조합과의 임단협 교섭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등 한국노총 소속 삼성그룹 내 노동조합들의 임단협 체결은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노총은 "무노조 경영을 하지 않겠다, 법을 준수하겠다, 노사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겠다, 건전한 노사 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 등은 대한민국의 많은 노사가 지켜가고 있는 내용"이라며 "굳이 이 부회장의 사과를 평가 절하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결국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또 "현재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를 비롯해 한국노총 산하 삼성그룹 내 노동조합들은 임·단협을 진행 중이거나 사측에 교섭을 요구하고 있지만, 삼성은 여전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삼성은 즉각 성실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삼성의 노동탄압에 대한 책임자 처벌과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300일 넘게 고공 농성 중인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 씨 등을 무노조 경영의 피해자로 거론하고 "직접 사과와 복직, 보상이 돼야 하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오늘 발표가 사과문으로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경영 승계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 탈법적인 행위에 대한 사죄와 원점으로 돌려놓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며 "위법적으로 축적된 재산 전액을 사회에 환원하는 게 그 출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늘 발표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권고로 이뤄진 것으로, 이후 재판에서 사법적으로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된다"며 "불법행위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지는 것과 오늘 사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정치권도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 발표에 대해 말뿐이 아닌 책임있는 실천을 요구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변명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도덕적 책임회피와 법적 자기면죄부를 위한 구색 맞추기식 사과에 불과하다"며 "법적인 잘못을 도덕적인 문제로 치환해 두루뭉술하게 사과하는 일은 제대로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12년 전,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사과문과 같이 언제든지 휴짓조각처럼 버려질 수 있는 구두 선언에 불과하다"며 "이미 저지른 불법을 바로 잡는 일은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당 유상진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대국민 사과문은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으로 이번 사과가 결코 삼성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감형으로 악용이 돼선 안 된다"며 "사과보다 사법정의가 우선이다. 죄를 인정한다면 사과와 함께 이에 걸맞은 법적 처벌을 달게 받기를 바란다"며 "무노조 경영에 대해 잘못을 인정한다면 300일이 넘게 강남역 철탑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에 대해 사과와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 피해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이번 사과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준법감시위는 지난 3월 11일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총수인 이 부회장이 반성·사과하라고 권고했으며 이 부회장이 직접 삼성의 '무노조 경영' 포기를 표명하라고 주문했다. 삼성 준법감시위는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가 지난해 10월 내부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라는 주문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올해 2월 공식 출범한 외부 감시기구다.

준법감시위가 요구한 대국민 사과의 1차 기한은 지난달 10일이었지만, 삼성 측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권고안 논의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며 연장을 요청해 이달 11일로 연장됐다.

이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하는 것은 2015년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의 책임과 관련해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사과한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삼성 총수가 대국민 사과를 한 것도 1966년 이병철 창업주가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건희 회장이 2008년 차명계좌 의혹으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인 이후 네번째이기도 하다.

 

/조혁신기자mrpe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