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 유명한 윤동주의 `서시(序詩)'다. 그가 일제 강점기인 1941년 11월20일 지었고,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에 수록됐다. 시대적·개인적 고민과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품고 있다. 짧은 시엔 `부끄럼 없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오롯이 담겼다. 더없이 큰 도덕성이 엿보인다. `죽어가는 모두를 사랑하겠다'는 따뜻한 마음도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어렵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 이겨나가겠다는 구절은 특히 마음을 울리는 대목이다.

세상을 살면서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칭찬을 받을 만한 일도 생기고, 욕을 먹을 일도 많다. 인간 삶 속에서 공과는 어쩔 수 없는 이치다. 오르막 내리막 길을 반복하며 걷는 게 인생이지 않은가. 어찌 살아가면서 좋은 일만 가득하고, 치욕스런 일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나. 그래도 윤동주 시인은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심정으로, 부끄럼 없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도덕적 양심(道德的 良心)'을 지키겠노라고 외친다. 이 시가 갖고 있는 제일의 덕목이다.

1960년대만 해도 초등학교 교과목 중엔 `도덕'이 있었다. 그만큼 도덕을 중시하는 사회의 흐름이지 싶다. 어려서부터 사회의 규범을 익혀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 바람직한 행동 규범이 도덕이다. 타고난 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도 그와 일맥상통한다. 인간이 가는 길에 덕을 우선해 놓는 법을 노자는 강조했다. 양심이란 어떤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을 가리킨다.

맹자는 말한다.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으면 안 된다. 부끄러움 없음을 부끄러워한다면, 부끄러움이 없다.(人不可以無恥. 無恥之恥, 無恥矣.)” 염치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부끄러움과 염치를 잃어버린 사회엔 더이상 희망을 바라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찌 지내고 있나. 지도층 인사나 정치인, 심지어 몇몇 성직자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증거가 드러나도 온갖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게 다반사다.

우리는 지금 `염치 상실'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몰염치를 넘어 파렴치와 후안무치(厚顔無恥)가 판을 치는 사회라고 할까. 법을 위반해도(그 사실이 증명되지만 않으면) 떳떳하다고 오히려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이 많다. 정말 비정상적이고, 결코 정의롭지 않다. 도덕적 양심과 인간성의 회복이 시급한 실정이다. 상식이 통하고, 상식이 살아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얼마 있으면, 새로 금배지를 단 21대 국회의원들이 등원해 일을 시작한다. 국민들의 기대를 안고 이들은 각자 법 수호 기관으로서 과업을 수행한다. `여대야소'를 떠나 국민들은 협치를 하며, 공동체의 선이 무엇인지를 보여 달라고 주문한다. 국민들만 바라보고 일을 하는 국회의원들을 보고 싶어한다. 당리당략에 휩쓸려 서로 싸움박질에만 매달리는 데 이젠 신물이 났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고, 국민들은 한입으로 두말을 하는 국회의원을 아주 싫어한다. 겉과 속이 다른 선량들을 경계한다. 선거공약을 헌신짝 버리듯 하고, 국민들을 우습게 여기는 국회의원에게 표를 던진 일을 후회한다.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는 법이란 말도 있듯,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런 국회의원은 되레 어줍잖게 `활개'를 치고 다니는 편이다. 염불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몰두하는 비정상적 인간이다. 한마디로 부끄러움과 염치를 모르는 이들이다. 선거기간엔 속을 내줄 것처럼 굽신거리다가, 당선 후엔 목에 힘을 주고 으스대는 국회의원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파렴치한 이들로 인해 우리는 희망을 잃어버리고 좌절을 겪기도 한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감탄과 경외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 머리 위에 별이 총총히 빛나는 하늘이며, 다른 하나는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양심이 마음 속에 빛나고 있다고 한 묘비명이다. 정직하고 올곧은 국회의원에게서 `양심의 횃불'이 활활 타오르길 바란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