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 말의 축현초등학교.


두어 달 전, 1950년대 말 인천에서 발행된 <주간인천> 신문에서 아주 흥미로운 기사 한 편을 접했다. `어린이날' 즈음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껴두었다. 신문 기사를 토대로 그 사건을 재구성해 본다.

1958년 6월12일 오후 1시경 동인천역 부근의 축현국민학교 6학년생 열두 명이 `집단 가출'했다. 미국, 아프리카 등으로 가서 대성(大成)하기로 서로 다짐하고 학교 문을 나섰다. 떠나기 전 급우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가출 계획은 오래 전부터 준비했다. 미리 갹출한 돈으로 양초, 지도, 빵 등을 마련했다.

그들의 1차 목적지는 부산이었다. 그곳에서 밀항선을 타기 위해서다. 일단 걸어서 경기도 군자(현 시흥시)를 지나 수원까지 간 후 형편 되는 방법을 택해 대전을 거쳐 대구까지 가는 것이었다. 대구에 도착하면 일단 전원 해산하고 개별행동을 해서 부산의 모처에 재집결하는 것이었다. 여정 동안 구두닦이, 구걸 등으로 끼니를 이어가며 가능한 많은 돈을 확보하기로 했다.

몇 시간 후 학부모와 교직원들은 그들의 가출을 알아챘지만 행방이 묘연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때 실종 학생 중 한 명이 교정에 나타났다. 경기도 군자 부근에서 낙오돼 일행과 헤어져 인천으로 되돌아왔다.

어둠이 깔릴 무렵 아이들은 수원 근방에 있었다. 한밤중에 여남은 명의 국교생들이 함께 걸어가는 것을 이상히 여긴 모 기관원이 그들을 불러 세웠고 불심검문을 했다. 그들은 결국 전후 사실을 실토하고 말았고 잠시 후 추적해 온 교직원들에게 인계되었다. 한나절의 실종사건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밀항을 꿈꿨던 그 소년들은 이후 어떠한 인생의 여정을 걸어왔을까. 당시 13세 정도였으니 이제 70대 중반에 접어든 노년이 되었을 것이다. 모험심 가득했던 그 아해(兒孩)들이 어느 곳에서 대성(大成)한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