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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보물지도 ②수원시] 정조임금이 남긴 '경기 최대 노다지'
[경기보물지도 ②수원시] 정조임금이 남긴 '경기 최대 노다지'
  • 박혜림
  • 승인 2020.04.30 20:27
  • 수정 2020.04.30 2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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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 강화·조선개혁 꿈꾼 정조
이상 담은 신도시 수원화성 짓고
압도적 지원…한양만큼 키워내

최다 보물 보유…도시가 문화재
규모·격식 전국으뜸 행궁 `화성'
2중 방어효과 옹성 갖춘 `화서문'
공성전 최적화 설계 `서북공심돈'
성안건물 중 가장 화려 `팔달문'
경관 우수한 전시용 `방화수류정'
정조 어진 모신 전각 `화령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화성이 위치해 있는 수원에는 정조 임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도시 전체가 문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운치와 멋스러움이 묻어나는 곳이다. 경기도 31개 시_군 중에서 가장 많은 보물을 보유하고 있는 수원의 문화재를 두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수원시

위치:경기도 남서부에 위치한 시

면적 :121.05㎢

인구 :119만2792명(2020년 3월 기준)

행정구역 :장안구, 권선구, 팔달구, 영통구

시화 :진달래

시목 :소나무

시조 :백로

주요 명소 :만석공원, 수원화성, 화성행궁,

광교호수공원, 광교산, 월화원, 서호공원

 

수원시는 경기도 중남부에 위치한 경기도청 소재지이자 경기도 최대도시로 북으로는 의왕시, 동쪽으로는 용인시, 남쪽과 서남쪽으로는 화성시, 서쪽으로는 안산시와 접해 있다.

수원은 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대왕과 떼어놓을 수 없다. 왕권 강화와 조선개혁을 목표로 하던 정조는 현 경기도 수원시에 이상을 담은 신도시인 수원 화성을 건설했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다. 한적한 시골에 불과하던 수원은 정조의 압도적인 지원으로 당시 평양, 조선의 수도인 한양과 어깨를 견줄만한 도시로 성장했다. 정조는 도성인 한양에서 수원으로 자주 행차하곤 했는데 정조의 행차는 오늘날 `정조행차축제'로 만들어져 수원의 문화축제로 이어지고 있다.

 

#최초 신도시의 시작 `수원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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ㅛㅜ루화성 성벽./사진제공=수원문화재단
수원 화성 성벽./사진제공=수원문화재단

[사적제3호]

소재지: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1-2번지

지정일:1963년 1월21일

1789년 수원읍을 화성시 안녕면 일대에서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관청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됐다.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잠시 머무는 행궁으로도 사용됐다. 조선시대 행궁은 남한산성 행궁이나 북한산성 행궁, 온양온천 행궁 등 여러 곳에 있었지만 전국의 행궁 가운데 화성 행궁은 규모에서나 격식에서 가장 돋보이는 곳이었다.

정조는 1789년 10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옛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기고 이듬해 2월부터 1800년 1월까지 13차례 현륭원을 방문했고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렀다. 특히 1795년(정조19)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치르면서 이름도 고치고 건물도 새롭게 지었다.

 

 

#독보적인 건축양식 `수원 화서문'

사진8 수원 화서문의 야경./사진제공=수원문화재단<br>
사진8 수원 화서문의 야경./사진제공=수원문화재단

[보물 제403호]

소재지: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334번지

지정일:1963년 1월21일

 

화서문은 수원 화성의 서쪽문으로 문의 모든 시설과 크기는 동쪽의 창룡문과 거의 같은 구조로 돼 있다. 네모 반듯한 큰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축대 위에 1층의 건물을 세웠는데,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기둥 사이는 모두 개방돼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 건물이고 축대의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과 문의 앞쪽에 벽돌을 쌓은 반달모양의 옹성이 있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지켜 2중 방어효과를 갖는다. 한국의 다른 성곽 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시설로, 구조도 특이해 화서문을 중심으로 일대의 경치는 한층 더 아름다움을 주고 있다.

 

 

#전장을 승리로 `서북공심돈'

사진3 서북공심돈 전경./사진제공=수원문화재단<br>
사진3 서북공심돈 전경./사진제공=수원문화재단

[보물 제1710호]

소재지: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332번지

지정일:2011년 3월3일

화성의 화서문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정조 20년(1796)에 건립되었다. 수원 서북공심돈은 화성 서북측 성벽에서 돌출시켜 남측면의 일부만 성곽에 접하고 나머지 3면이 돌출된 평면을 이루고 있다. 3층 구조로 1층과 2층 외벽과 3층 하부는 전돌로 쌓았다.

1, 2층 각 면에는 6개의 총안(銃眼.총을 내쏠 수 있도록 뚫어놓은 구멍)이 있으며, 3층에는 여장(女墻)을 쌓고 같은 높이에 4개의 총안을 내었다. 3층 포루(鋪樓.치성위에 군사들이 몸을 숨긴채 적을 살피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누각)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벽면 위쪽의 판문에는 전안(箭眼. 활을 쏘거나 적정을 살피기 위하여 성벽에 뚫은 작은 구멍)이 설치돼 있다.

수원 서북공심돈은 현존하는 성곽 건축에서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재료의 유연성과 기능성이 우수하며, 치성의 석재 쌓기 기법과 상부 공심돈의 전돌 축조 기법, 현안과 총안, 전안 등의 중요한 시설 등 독창적인 건축형태와 조형미를 가지고 있다.

 

 

#크고 수려한 문 `수원 팔달문'

사진7 수원 팔달문 전경 모습./사진제공=수원문화재단<br>
수원 팔달문 전경 모습./사진제공=수원문화재단

[보물제402호]

소재지:경기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2가 138번지

지정일:1964년 9월3일

팔달문은 수원 화성의 남쪽문으로 이름은 서쪽에 있는 팔달산에서 따왔다. 문루는 앞면 5칸·옆면 2칸의 2층 건물이며,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각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짠 구조가 기둥 위뿐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문의 바깥쪽에는 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해 반원 모양으로 옹성을 쌓았다. 이 옹성은 1975년 복원공사 때 고증하면서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또한 문의 좌우로 성벽이 연결돼 있었지만 도로를 만들면서 헐어버려 지금은 성문만 남아 있다.

수원 화성 안쪽에 있는 여러 건물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발달된 조선 후기의 성문 건축형태를 고루 갖추고 있는 문화재이다.

 

 

#18세기 조선의 정자 `방화수류정'

사진2 방화수류정(동북각루)의 야경./사진제공=수원문화재단<br>
방화수류정(동북각루)의 야경./사진제공=수원문화재단

[보물 제1709호]

소재지: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151번지

지정일:2011년 3월3일

조선 정조 18년(1794) 건립됐으며, 화성의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은 전시용(戰時用)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고려해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하게 사용해 조성된 건물이다.

수원 방화수류정은 송나라 정명도의 시(詩) `운담풍경근오천(雲淡風輕近午天), 방화수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따왔으며, 편액(문에 거는 액자)은 조윤형(曺允亨1725~1799)의 글씨이다.

주변 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대 정자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고, 다른 정자에서 보이지 않는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의 특이성 등을 토대로 18세기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정조 임금을 만나는 곳 `화령전'

사진10 화령전에 보관돼 있는 ‘정조 임금의 어진’./사진제공=문화재청<br>
화령전에 보관돼 있는 ‘정조 임금의 어진’./사진제공=문화재청

[사적 제115호]

소재지:수원시 팔달구 신풍로 23번길 15

지정일:1963년 1월21일

정조의 어진(御眞) 즉 초상화를 모셨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어진을 모신 건물이 전국 여러 곳에 있었지만 지금은 전주 경기전과 개성 목청전 및 창덕궁 선원전 그리고 화령전만이 남아있다. 화령전은 정조 승하 이듬해인 1801년(순조원년)에 세워졌는데 이때 현륭원 재실에 모시고 있던 정조 어진과 창덕궁 주합루에 있던 어진을 함께 봉안했다. 현재 화령전에 모셔져 있는 어진은 1953년 정조 어진이 소실된 이후에 새로 만든 표준영정이다.

화령전은 정전과 이안청, 복도각 및 재실과 향대청·전사청등이 갖추어져 있고 내외삼문까지 구비돼 조선시대 국왕 초상화를 모신 영전(影殿)의 격식을 두루 갖춘 보기 드문 전각이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자료·사진 출처=문화재청·수원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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