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한 손은 위대했다. 가장 아픈 세월호의 상처를 후벼파면서까지 막말을 서슴지 않았던 이들,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던 정치인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지난 4·15 총선 결과는 한마디로 `제대로 개혁 한번 해 보라'는 민중의 주문이다. 숫자가 모자라서 개혁을 못한다는 핑계를 댈 수 없도록 유권자들은 새 판을 짜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집권 여당이 할 일만 남았다고 말한다. 압도적인 승리를 안겨 줬으니 이제는 정치권이 알아서 할 차례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지금까지 넘은 산보다 훨씬 크고 험한 산이다.

지금까지는 분단체제 안에서의 싸움이었다. 분단체제 안에서 적폐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그 노정에서 많은 희생도 따랐다. 희생의 대표적인 예는 노무현대통령의 서거다. 적폐와 정면으로 맞붙어 싸웠던 대통령이지만 결국 적폐세력과 일정 부분 타협해야 했고 끝내 적폐세력의 끈질긴 공격에 희생당하고 말았다.

노무현대통령의 희생은 뼈 아픈 반성과 함께 값진 교훈을 안겨 주었다. 이는 문재인대통령에 대한 철통지지로 나타났다. 지난 총선에서 여당이 크게 승리한 것은 문재인대통령의 지지율 덕분이었다는 말이 널리 공감을 얻을 정도다. 총선 승리는 그렇게 쟁취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분단체제를 넘어서는 싸움이 전개된다. 이는 본질적으로 외세와의 싸움이다. 분단체제 안에서의 싸움에서는 외세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분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외세가 드러난다. 물 밑에 숨어 있던 잠수함이 수면 위로 부상하듯 그렇게 드러난 것이 미국의 내정간섭이다.

2018년 남과 북이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전쟁종식과 평화공존을 약속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에 나서자 미국은 그동안 숨겨 왔던 본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남북의 화해 조치에 제동을 걸고 나선 한미워킹그룹, `미국의 허락 없이 한국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깊이 실망했다'는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의 망언, 한국인노동자들을 인질 삼아 무급휴가로 위협하면서 감행하는 터무니없는 주둔비 인상 요구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외세와의 싸움에서는 우리민족끼리 손을 잡아야 승리할 수 있다. 북은 외세와의 싸움에서 이미 승기를 잡고 있다.

지난 18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았다고 자랑삼아 발언한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아 북이 `웃기지 말라'는 듯 이를 부인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북은 친서 따위로 속임을 당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면서 미국의 실질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남쪽이다. 개혁은 분단극복을 목표로 해야 한다. 다수 의석을 차지한 개혁세력은 머뭇거리지 말고 분단체제를 넘어서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동안 총독처럼 군림해 온 해리스 미국 대사의 의중이나 발언 쯤은 적당히 지르밟고 남북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주한미군 주둔비를 인상해 달라는 압박에는 철군 요구로 맞서야 한다. 살얼음판에 발 디디듯 눈치보면서 하는 한미연합전쟁연습도 이제는 완전히 폐지하고 평화협정 체결을 추동해야 한다.

외세와의 싸움은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힘이나 정치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민중의 힘이 강력하게 뒷받침돼야 한다. 1700만 촛불이 광화문광장에 지속적으로 일렁일 때 적폐정권은 무너져 내렸다. 외세를 극복하는 일에는 촛불보다 강력한 횃불이 필요하다.

촛불로 적폐를 끌어내렸던 손, 투표로 개혁의 동력을 만들어 준 손, 그 손으로 이제는 횃불을 들 때다. 우리민족끼리 외세를 극복하고 통일을 이뤄낼 자주의 횃불을 …

 

지창영

 

평화협정운동본부 집행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