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고 나면 그뿐인 시절이 있었다

꽃이 시들면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던 시절

나는 그렇게 무례했다

 

모란이 지고 나서 꽃 진 자리를 보다가 알았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다섯 개의 씨앗이 솟아오르더니 왕관 모양이 되었다

화중왕이라는 말은 꽃잎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란꽃은 그렇게 지고 난 다음까지가 꽃이었다

 

백합이 지고 나서 보았다

나팔 모양의 꽃잎이 지고 수술도 말라 떨어지고 나서

암술 하나가 길게 뻗어 달려있다

꽃가루가 씨방에 도달할 때까지 암술 혼자서

긴긴 날을 매달려 꽃의 생을 살고 있었다

 

꽃은 그러니까 진 다음까지 꽃이다

꽃은 모양과 빛깔과 향기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랑이 그러하지 않다면

어찌 사람과 사랑을 꽃이라 하랴

 

생도 사랑도 지고 난 다음까지가 꽃이다

 

나는 순자의 `성악설'에 언제나 동의하지 않았다. 차라리 고형렬의 `사람꽃 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으랴'를 좋아했다. 내 가치 기준은 그렇다. 세상에 존재하는 향기 중 사람향기 만큼 기분을 들뜨게 하는 것이 있을까. 사람은 살아서도 꽃이고 죽어서도 꽃이다.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무(無)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존재가 살았던 웃음, 언어, 눈짓, 체온, 사랑, 눈물은 여전히 남아 살아남은 이들에게 그 향을 고스란히 전해 준다.

일찍이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 모두는 꽃이 되고 싶다'라고 했다. 신동엽 시인 또한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라고 하며 영혼으로 돌아간 이들의 꽃의 환생을 노래한 적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다 꽃이고, 그들이 만들어낸 일생의 행적 또한 다 꽃이다. 사람이 꽃이 아니라면, 삶이 꽃이 아니라면 이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오늘도 길을 걸을 때마다 인사를 한다. 너를 만나 반갑다. 오늘도 내 앞에 현현해 줘서. 아이들에게, 꽃들에게, 돌들에게, 추억들에게 …

내일은 또 어느 아름답고 향긋한 너를 만날 수 있을는지 …

/권영준 시인·인천삼산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