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지에 추억 소환 어르신들 치매 예방
/사진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크레파스와 도화지가 있으면 어르신들도 오래 전 기억과 추억을 떠올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새록새록 떠올린 기억들로 채워진 알록달록한 그림은 어르신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수십년간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어르신들에게 그림을 통한 회상요법으로 미술치료를 해온 이가 있다. 그늘진 어르신들의 얼굴에 평온한 미소를 찾아주는 신현옥(68)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장을 지난 14일 만났다.

 

#소통과 공감의 문화공간 필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노인 치매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선 문화를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특히 정서적 안정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또래 문화’의 형성이 최적의 치료법이 될 수 있지요.”

36년간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를 이끌어온 신현옥 회장은 치매 노인들과 마주하며 미술을 통해 치매 질환이 호전되는 것을 뚜렷이 목격했다. 그는 미술을 접목한 회상요법을 통해 어르신들의 행복감과 정서적 안정감이 커지는 것을 지켜봐왔다.

“회상요법은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가 주로 사용하는 미술치료법입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어르신들이 옛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지요. 이를 테면 특정한 주제를 제시하고 생각나는 장면을 그려보게 합니다. 대개 보리밭을 주제로 주곤 하는데 저마다 가지고 있는 보리밭에 대한 추억들을 떠올리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립니다.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행복감도 느끼고 기억도 되찾으며 점차 치매 증상이 완화되는 결과를 낳게 되죠. 치료 별거 없습니다. 어르신들이 정신적으로 행복하면 그게 바로 치료라고 생각해요.”

치매미술치료 전도사인 신 회장은 비슷한 시대 경험을 한 노인들이 함께 모여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겪기 마련입니다. 국가는 치매 문제를 치매 환자뿐만 아니라 노인으로 영역을 확대해 문화시설을 확충하고 그 곳에서 여가 향유를 통해 자연스럽게 어르신들이 미술활동을 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래 전 풍경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는 어르신들에게 당시 배경과 환경을 공감할 수 있는 또래가 모여있으면 충분한 마음의 안정감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어르신 문화창작활동을 돕다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는 1984년 수원에 둥지를 틀었다. 협회는 10여 년간 시어머니의 치매 병수발을 들었던 신 회장의 경험이 기반이 됐고, 치매미술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한 공무원의 도움으로 설립이 가능했다.

“시어머니께서 오랜 기간 치매 질환을 앓으셨죠. 시어머니를 간병하면서 크레파스 한 자루를 손에 쥐어 드렸더니 시간이 갈수록 치매 질환이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화가였던 저는 이런 효과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림만 그릴 줄 알았지 정책이라던가 지원 복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죠. 그때 만난 분이 지금은 정년퇴직하신 경기도청의 노완호 복지정책과장님이셨습니다. 제가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분들을 상대로 미술수업하는 것을 지켜보시고 치매미술치료협회의 설립을 제안하셨습니다. 복지 분야에 있어 한 걸음 앞서 가신 분이셨죠.(웃음)”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치매미술치료협회는 수십년의 세월을 거치며 치매예방과 치매미술치료에 선구자적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어르신들의 문화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대한민국 청춘미술대전’은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하며 명실상부한 치매미술치료협회의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하게 됐다.

 

#성 소피아 성당에서 전시를

어르신들이 더듬더듬 기억을 짚어가며 그려나간 귀중한 추억을 담은 작품들을 신 회장은 빠짐없이 모아뒀다. 그렇게 수집한 그림들은 어마어마하게 쌓여갔다.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사비를 들여 ‘건강미술역사박물관’을 세우고 그림들을 보관했다. 그러다 여행이라도 가는 날이면 어르신들의 그림부터 몇 점 챙겨 짐을 꾸렸다. 

“미술 버스킹을 하러 갔어요. 음악만 버스킹 하라는 법 있나요? 어르신들의 작품을 들고 해외든 국내든 여행 명소에 가서 그림을 전시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성 소피아 성당에서 수녀님의 양해를 얻어 전시를 했는데 오는 관광객마다 성원을 보내주더라고요. 작품 실력에 한번 놀라고 그림에 새겨진 어르신들의 연세에 두 번 놀라더라고요. 달리 전시장이 있는게 아닙니다.”

그렇게 신 회장은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로마, 터키의 유명 관광지를 돌며 게릴라식 전시회를 열었다. 어르신들의 작품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통하는 감성이 있더라고요. 어르신들의 그림에는 우리 한국의 전통문화, 역사가 모두 담겨있거든요. 문화는 글로만 배우는게 아니에요. 가슴으로도 배울 수 있다는 걸 몸소 깨닫게 됐죠.”

 

#시골소녀, 예술의전당에 서다

신 회장은 미술 대학 문턱 조차 밟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오로지 실력으로 한국미술협회 이사직을 수행했고, 내로라하는 전시장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지금도 서울아산병원이나 수원의 유명한 식당인 가보정에 가면 그의 작품이 걸려 있을 만큼 많은 수집가들이 신 회장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재주가 남달랐던 신 회장은 은사의 칭찬 한마디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결심했다. 그렇게 시작한 그림은 한평생 100호 크기의 작품만 60여 점을 훌쩍 넘을 만큼 걸출한 작품들을 작업했다. 붓이 굳을까 싶어 수도 없이 그렸던 그림은 그를 최고의 서양화가로 만들어 주었다.

“붓을 빠는 법을 몰라서 붓이 굳기 전, 그림을 그려야 된다는 생각에 매일같이 그림을 그리게 됐죠. 덕분에 실력은 날로 성장했어요. 제 그림을 주변에서 인정해주기 시작하더군요. 1999년 예술의전당에서 가졌던 개인전 ‘현유도전’은 절대 잊지 못합니다. 플래카드 현수막을 내걸며 충청도 서산에 살던 시골소녀가 드디어 예술의전당에서 개인전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벅찬 감동이 느껴졌어요. 언제나 최선을 다했거든요.”

화가로서 명성을 이룬 신 회장이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길, 모두가 마다하는 일에 사비를 들여가며 열성을 쏟는데는 어르신들의 추억그림에 대한 소중함 때문이다.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보관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어르신들의 추억 그림이 아까울 뿐이죠.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의 봉사자들과 제가 찾아올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있기에 저는 걸음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