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기념물 68호로 지정된 영일 정씨 묘역.


1994년 `연수택지개발지구'를 한창 조성할 즈음 동춘동으로 이사와 현재까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당시 마트나 병원 등 생활기반 시설이 거의 없어 불편했지만 주변 환경에 반해 이곳으로 이주했다. 집집마다 뻐꾸기시계를 걸어 놓던 시절이었는데 우리 동네 뒷산에서 진짜 뻐꾸기가 시도 때도 울어댈 만큼 자연환경이 좋았다. 아파트 바로 뒤 야산에는 오래된 무덤들이 많았다. 철없는 동네 아이들은 무덤 위에 올라가 미끄럼 타거나 분묘를 지키는 돌짐승을 올라타기도 했다. 어른들도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깔거나 시원한 상석에 눕기도 했다. 몇 년 후 무덤 주변에 기다란 펜스가 쳐졌고 산책로와 등산로는 지정된 곳으로만 다닐 수 있었다. 이곳이 영일(迎日) 정씨(鄭氏) 묘역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영일 정씨가 이곳에 터를 잡은 때는 조선 중기인 1607년 정여온(鄭汝溫)이 아버지 정제(鄭濟)의 묘를 쓰면서부터다. 정여온은 부친 모실 곳를 찾기 위해 지관과 함께 전국을 뒤지다가 인천 청량산 구릉, 일명 능어리(陵御里)에서 이 명당을 발견했다. 묏자리 덕이었는지 이곳에 뿌리내린 후손들은 대대손손 번창했다.
현재 이 묘역에는 17기의 묘가 있는데 좌의정, 우의정, 참판, 관찰사, 군수 등 조선시대 고위 관직을 지낸 후손들이 묻혀있다. 얼마 전 묘비, 문인석, 망주석, 상석 등 석물(石物) 66점이 보존돼 있는 이 묘역이 인천시 기념물 68호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제 이곳은 도로가 사통팔통으로 났고 동막 앞바다가 메워지면서 맥이 끊어져 더이상 `명당'의 지세가 아니라고들 한다. 언제부턴가 뻐꾸기 소리도 사라졌다. 청량산은 사시사철 등산객들로 꼬리를 무는 친근한 동네 산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산 초입의 능어리는 한 가문의 명당이 아니라 시민이 사랑하는 명당으로 거듭나고 있다.
올여름에는 뻐꾸기 소리를 다시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