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는 침몰했다. 배 안에서 꽃다운 생명들이 속절없이 스러져 갔다. 그 처참한 현장을 온 국민이 똑똑히 지켜봤다. 배는 아주 천천히,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런데 왜, 어떤 이유가 있어서 충분했던 시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구출할 수 없었는가. 6년의 세월이 흘렀다. 국민이 다시 묻는다. 과연 그날의 진실은 무엇인가?

6년 전, 바로 그날 이후로 대한민국은 갈라졌다.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덮으려는 자, 상처를 치유하려는 자와 상처에 소금 뿌리는 자, 둘 중 어느 쪽엔가 서서 편들고 비난하는 자. 지난 6년 대한민국은 무기력했다. 단언컨대 싸우고 편들고 비난했던 일 말고 남은 성과는 없다. 정치는 특히 무기력했다.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철석같이 약속했던 추모공원 하나, 트라우마센터 하나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싸움으로 날 샜던 국회는 그렇다 쳐도 정부가 한 일은 또 뭔가. 이른바 세월호와 관련한 예산은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만지작거리는 일만으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간에도 상처를 이기지 못한 채 아이들의 뒤를 따르는 목숨이 줄을 이었다. 갑갑했던 민심이 제대로 폭발했다.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다. 예전과 달랐다. 색깔론은 발을 붙이지 못했다. 방해하고 조롱하며 줄기차게 막말로 응수했던 자들에게 가혹한 철퇴를 내렸다. 집권 여당에는 다시 한번 기회를 부여했다. 야당에는 건전한 보수의 재건을, 여당에는 제발 이번만은 제대로 해 보라는 당부를 과제로 부과한 결과다. 표면적으로 코로나19와 재난기본소득 논쟁이 총선 이슈를 장악한 듯 보였으나 민심의 기저에 도도히 물결쳤던 민의는 결국 세월호로부터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촛불민심은 여전했다. 바야흐로 우리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역사적 지평 위에 섰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이전의 대한민국과 다르다. 그러므로 세월호의 진실규명은 이전 시대를 마감하고 다른 대한민국에 들어섰음을 확인하는 상징일 터, 정부와 여당에 부여한 민심의 명령 그 첫째는 단연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규명이다. 사람과 시대를 치유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일, 국민이 문재인 정부에 부여한 숙명적 과제다. 알파와 오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