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21일, 인천에서 4.19혁명을 잇는 항쟁이 시작됐다. 데모는 하루 만에 그친 것이 아니라 사흘 이상 이어졌다.
당시 인천의 중심가였던 중구 싸리재, 답동광장, 내동 거리를 비롯해 동인천역, 중앙동 일대에서 이승만 정권에 저항하는 횃불을 들었다.
학생들은 전국에서 연행된 이들의 석방과 정부통령 선거의 재선거를 요구하는 가두 행진과 연좌시위를 벌인 뒤 각 학교 대표들이 인천시청사 앞에서 잇따라 선언문을 낭독했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다음은 제물포고등학교 학생 대표가 발표한 선언문 전문이다.
"먼저 피를 흘리고 쓰러져간 학도들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 700제물포고등학교 학도들은 현재 전국에서 야기된 불평과 슬픔과 과오를 시정하려고 평화적이요 무저항적인 데모를 감행하려고 합니다. 마산에서 두 차례에 걸친 민족의 의거가 발생하였으며 주권을 가진 국민들은 경찰에 의하여 무참히도 죽어갔읍니다.
나와 같은 피를 타고난 혈족이, 심지어는 심한 고문 끝에 쓰러진 나의 형제가 물속에 던져졌읍니다.
아아 정의감에 불타는 학도들이 이이상 더 참을 수가 있겠읍니까. 서울에서의 평화적 데모로 일부 몰지각한 '깡패'들에 의하며 불상사를 비쳤읍니다. 국민권리의 회수를 요구하는 젊은 청년학도들과 시민들이 경관들의 무차별한 기관총 난사에 고귀한 피를 흘렸읍니다.
아아 이래도 우리는 더 참을 수 있겠읍니까. 안됩니다. 그들이 흘린 피의 대가를 찾아야 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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