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다 …" 국내 대중가요 고전으로 통하는 이 노래 작곡자는 미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1850년 영국 춤곡을 바탕으로 새롭게 지을 당시 '우리가 집으로 돌아올 때'라는 제목의 찬송가였다. 이어 일본으로 전해지면서 '새하얀 후지산의 뿌리'라는 진혼가로 바뀌었다고 한다. 국내에선 1920년대 바이올린을 켜는 악사가 등장해 이 노래를 연주하면서 '희망가'란 제목의 대중가요로 탈바꿈했다. 일제시대 망국의 한과 실의를 달래면서 각성을 촉구한 노래로 유명하다.

이번 21대 총선을 지켜보면서 문득 이 노래가 떠올랐다. 국회의원이 뭐길래 이렇게 승패에 연연하는가. 다른 국가에서도 이렇게 극성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한쪽에선 '정권안정'을, 다른 한켠에선 '정권심판'을 정말 치열하게 호소한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나.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말 혼란스러웠다. 서로 정반대 생각을 내놓아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림으로써 국론을 나눠버렸다. 그 결과는 차치하더라도 당혹함을 넘어 나라를 아예 둘로 쪼갠 듯한 느낌이다.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풍토가 개탄스럽기만 하다.

인생이야 본디 '바람 속 먼지 같은 존재'일 텐데, 왜 이렇게 치고박고 싸우며 날 새는 줄 모를까. 겉으론 국민들에게 희망을 말하면서 속으론 잇속을 챙기는 건 아닌지…. 겉과 속이 달라서야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이다. 논어의 가르침인 군자(君子)와 거리가 먼 이들이다. 소인배다.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지 않고선, 이런 몹쓸 행태는 지속되리라고 여겨진다. 세상만사를 '춘몽'처럼 여기면 쓰겠는가. 현실을 사는 국민들에겐 헛된 상상일 수밖에 없다.

어찌 됐든 총선 잔치는 끝났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승리했든 패배했든, 이제 국민들은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 정치하는 이들이 우리 미래를 더 낫게 바꾸리란 믿음을 안고서 말이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국민들에게 한 약속이 한낱 꿈처럼 남지 않기를 고대한다.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란 놈은 권력자·부자·빈자 등을 가리지 않고 맹위를 떨치고 있다. 기승을 부렸던 우리나라에선 좀 가라앉았어도, 세계 각국에선 비명을 지를 정도로 거세다. 이처럼 코로나19는 엄청나게 빠른 전파 속도를 가진 바이러스로 악명을 올리지만, 새로 당선된 국회의원만큼은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했으면 한다. 당리당략을 떠나 국민들만 바라보고 일을 했으면 싶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큰 웃음과 희망을 찾아주길 바란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