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근대 문물 선구지로 통한다. 1883년 개항 이후 서양 문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다양한 건축물을 지어 '개화의 꽃'을 피운 곳이 인천이다. 대부분 일제 강점기 때 이뤄졌지만, 서울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인천은 그야말로 '국내 최초·최고'란 수식어를 붙일 만큼 갖가지 문물을 도입했다. 그러다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수많은 건축물이 파괴됐다. 그렇긴 해도 아직도 인천엔 상징적인 문화재급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천의 문화·역사적 가치를 지닌 근대 건축물들이 수난을 겪는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보존 명분이 없는 데다 사유지여서 철거를 하는 등 악순환을 거듭한다. 시가 근대 건축물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한 취지를 무색케 한다. 실례로 2017년엔 애경의 모기업이 공장으로 사용했던 115년 된 '애경사' 건물을 주차장으로 조성한다며 철거했다. 송주옥(1930년 건립)과 조일양조장(1939년 건립), 동방극장(1941년 건립) 등도 비슷한 이유로 없어졌다. 지금은 표지석만 남아 있는 상태다. 결국 근대 건축물의 역사적 보존 가치가 주차장만도 못하다는 얘기다.

일제 강점기부터 90여년의 세월을 견뎌낸 중구 내동 옛 인천감리서 옆 2층 건물도 얼마 전 무너져내렸다. 배다리 인천공립상업학교(지금의 인천고) 인근에 세워져 조선 민중들이 일자리를 구하던 공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인천근대문화유산 목록에 올랐던 이 목조주택은 등록문화재는 아니어도, 시가 2012년 건축물 조사 결과로 정리한 210개 목록 중 하나였다. 인천시립박물관이 발간한 '인천 근·현대 도시유적' 학술조사 보고서에도 '구 부천군수 관사'로 포함됐었다.

이처럼 되풀이하는 근대 건축물 철거 문제는 전적으로 시와 구의 책임이다. 소유주의 보존 의지가 없으면, 미리 매입을 해야 마땅하지 않는가. 아무리 보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해도, 핑계에 불과할 뿐이다. 지역 문화유산 가치를 띠고 있는 근대 건축물들은 우리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산이다.

특히 대개 일제 강점기 시절 국민 애환과 함께 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인천은 더 이상 역사를 잊어 미래를 저버리는 일을 저지르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