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6일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앞두고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사고 이후 해경과 선사가 취재에 거의 응하지 않는 상태에서 우연히 세월호 직원 명단을 입수했는데, 선원·승무원 29명의 이름과 직위,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었다. 매일 전화를 걸어봤지만 연결되는 경우는 없었다. 승객들을 내버려둔 채 탈출한 선원들은 전부 구속됐고, 승무원은 12명 중 9명이 사망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혹시나 해서 계속 전화를 걸던 중 세월호 식당 조리원이었던 김모(여)씨가 뜻밖에 전화를 받았다. 서울 구로구의 한 병원에 입원한 그는 사고 당시 휴대폰을 잃어버렸다가 딸에게 부탁해 하루 전 개통시켰다고 했다. 병원을 찾았더니 김씨는 극적인 탈출기와 함께 세월호의 속살을 전했다.

김씨는 동료 이모(여)씨와 함께 사고 당일 오전 9시쯤 배식을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배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식재료·냉장고·밥솥 등이 엎어져 아수라장이 되자 이들은 탈출을 시도했지만, 위로 몹시 기울어진 조리실 바닥이 식용유로 뒤범벅돼 미끄러워 올라갈 수 없었다.

김씨는 가스통에 발을 딛고 파이프를 잡고 기어오르던 중 갈비뼈가 부러졌지만 일단 조리실을 벗어났다. 김씨는 아직 조리실에 있는 이씨에게 빨리 올라오라고 소리쳤지만 이씨는 계속 미끄러지다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고 실종됐다.

선원용 식당에도 사무장 양모씨와 아르바이트생 구모씨가 남아 있는 상태였다. 식당을 나선 김씨는 선원 탈출을 주도하고 있는 기관장 최모씨에게 "식당에 아직 3명이 더 있다"고 호소했으나, 외면한 채 선원들끼리만 해경 구조보트에 올랐다. 김씨는 그 순간 시계를 보았다고 한다. 기막힌 사연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씨가 전한 박지영(여)씨와 정현영(여)씨 얘기는 가슴 아프다. 박씨와 정씨는 매점과 커피숍에서 각각 일하는 직원이었다. 서비스직 승무원이었기에 조기 탈출해도 그렇게 비난받을 처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선장과 선원 모두가 도피한 상태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학생들을 구조하다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들이 세월호의 진짜 선장이었다. 박씨는 학생들에게 "승무원은 마지막까지 있어야 해. 너희들 다 구하고 나는 나중에 나갈게"라는 말을 남겼다.

전화가 연결된 또 다른 생존 승무원 박모씨는 "다른 배를 타려면 자격증을 다시 발급받아야 하기에 바쁘다"면서 서둘러 끊었다. 구조된 강민규 단원고 교감은 '시신을 찾지 못한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할까'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세월호에는 너무나 성정이 다른 인물들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