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공물 파악 지도 원본
세종의 형 효령대군 초상
효령대군이 세운 3층석탑
정조 푹 쉬고 갔단 온온사
300년 전에 제작된 불상
김정희 친필편지 총23통
과천 곳곳에 흩어져 있어

 

 

경기도 방방곡곡의 문화재를 찾아라! 지역 곳곳에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의미있는 문화재 보물이 존재한다. 인천일보는 문화재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경기도 3개 시·군에 자리하고 있는 의미있는 다양한 문화재들을 찾아 소개한다.

전원도시 과천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인 조선방역지도와 효성이 지극했던 세종대왕의 형 효령대군의 초상화, 정조가 직접 이름 지은 온온사, 연주암 대웅전에 자리한 연주암 3층 석탑, 1991년 보광사에 모셔진 목조여래좌상, 정약용과 그의 아들 정학연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추사 김정희의 서신 등이 있다.

※과천시
위치: 경기도 중서부, 서울 남부에 있는 시
면적: 35.813㎢
인구: 5만8280명(2020년 3월 기준)
행정구역: 관문동, 문원동, 갈현동, 막계동, 과천동,
주암동, 중앙동, 원문동, 별양동, 부림동
시 화: 철쭉
시 목: 밤나무
시 조: 비둘기
주요 명소: 서울대공원, 서울랜드, 국립과천과학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과천시는 서울, 안양, 의왕, 성남 등 4개 대도시와 접하고 있는 전원도시이다. 지역개발로 문화유적을 조사하지 않아 선사시대 유적이 확인된 적은 없다. 그러나 문원동 일대에서 민무늬토기와 돌도끼가 출토됐고 안양의 평촌 신도시에서 고인돌이 발견된 걸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였으며 1402년(태종2) 8도제 실시로 경기도에 예속되고 1413년 지금의 명칭인 과천현이 되었다. 1986년 1월 과천시로 승격돼 정부과천청사 등 주요 기관을 수용하면서 행정도시의 기능을 담당하는 현대도시로 발전했다. 예로부터 과천은 서울의 남부 관문에 해당해 문물 왕래가 활발해 교육이 발달했다. 대표적인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1398년(태조7)에 창건한 과천향교가 있다. 그 뒤로 도립도서관과 국사편찬위원회,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개관하면서 문화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공물 진상 파악 '조선방역지도'

[국보 제248호]
소재지: 과천시 교육원로 86 국사편찬위원회 내
지정일: 1989년 8월1일

조선방역지도는 1557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이다. 크기는 63㎝×138㎝ 정도이며 비단 바탕에 채색 안료로 그려냈다. 제용감(조선 시대 각종 직물 따위를 진상하고 하사하는 일이나 채색이나 염색, 직조하는 일따위를 맡아보던 관아)에서 공물의 진상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이신 등 24명에 의해 제작됐다. 임진왜란때 왜군에 의해 약탈당했으나 해방 후 국사편찬위원회에 인계됐다.
지도는 우리나라 8도와 주와 현을 표시한 8도 주현도이며 수영(水營)과 병영(兵營)의 색을 달리해 알아보기 쉽게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지도의 하단에는 제작자의 이름과 관직 등이 적혀있다. 조선전기 지도로는 비교적 정확하게 그려진 지도이고 유일하게 원본이 보관돼 있다. 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는 표시돼 있지 않고 대마도와 만주가 표시돼 있어 조선 전기 영토의식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쓰인다.


#조선전기 초상화 '효령대군 영정'

[경기도지정 유형문화재 제81호]
소재지: 과천시 지하동길 63
지정일: 1978년 10월10일

효령대군은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로, 세종대왕의 형이다. 효성이 지극했으며 독실한 불교신자로 불경의 간행과 원각사 창건에 참여한 인물로 소개되고 있다. 대군의 영정은 연주암내 효령각에 봉안돼 있으며 크기는 가로 70㎝, 세로 90㎝로 비교적 작은 규모의 작품이다.
그림은 황색의 관모를 머리에 쓰고, 붉은색 홍포를 차려 입었으며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전신좌상이다. 어깨와 무릎 사이에서는 운문과 당초문을, 홍포 하단에는 여의두문과 용비늘 및 발톱3조가 이금으로 정성껏 처리됐다. 선반 위에 가지런히 올려진 신발처리 등을 통해 조선전기 초상화 양상을 읽을 수 있다.


#정조가 편히 쉰 객사 '온온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소재지: 과천시 관악산길 58 
지정일: 1980년 6월2일

조선시대 정조(1776~1800)가 수원에 있는 장릉에 가는 길에 머무르던 객사이다. 객사는 외부 관리인들이 그 마을에 들렀을 때 숙소로 이용하던 곳으로 다른 지역의 객사보다 규모가 큰 것이 특징이다. 온온사란 명칭을 갖게 된 것은 정조가 이곳에서 쉬는 동안 매우 편안했다해 붙여진 명칭으로 이곳의 현판을 정조가 직접 썼다고 알려져 있다.


#효령대군이 세운 탑 '연주암 3층 석탑'

[경기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04호]
소재지:과천시 자하동길 63
지정일:1981년 7월16일

연주암 대웅전 앞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탑은 3.6m 높이로 1층 기단(基壇)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형태를 띠고 있다. 전체적으로 정연하고 균형감 있는 모습이다.
조선 태종의 첫째 왕자인 양녕대군과 둘째 왕자 효령대군이 셋째 왕자인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계승할 것을 부탁한 후 궁궐을 나와 이곳에 머무르며 수도할 때, 효령대군이 세운 탑이라고 전해진다.


#용문사에서 옮겨진 불상 '목조여래좌상'

[경기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62호]
소재지: 과천시 교육로 41 보광사 내
지정일: 1996년 12월26일

보광사 법당 안에 모셔져 있는 높이 1.64m의 목조여래좌상이다. 17세기 중엽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여래좌상은 본래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에 봉안돼 있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한 보살에 의해 여주로 옮겨져 모셔졌으나, 1991년 다시 보광사로 옮겨졌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얼굴은 전체적으로 입체감있는 둥근 모습이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데 흘러내린 옷주름이 복부에서 부드러운 U자 모양을 이루면서 무릎을 덮고 있는 형태를 보인다.


#추사의 친필편지 '김정희 서신(3종 23통)'

[경기도지정 유형문화재 제244호]
소재지: 과천시 추사로 78 추사박물관 내
지정일: 2010년 9월8일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편지. 이 서신은 일제 강점기 추사 연구자였던 후지츠가 치카시가 소장하고 있던 자료를 그의 아들 후지츠카 아키나오가 과천시에 기증한 자료 중 하나이다.
추사 선생의 두 동생(김명희와 김상희)에게 보낸 13통, 역관 제자인 이상적에게 보낸 4통, 권돈인과 민태호에게 보낸 편지 6통 등 총 23통의 서신이다.
편지의 내용은 주로 가족과 관련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부모님의 건강 등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으며 다산 정약용과 그의 아들 유산 정학연에게 관한 언급들도 보인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자료·사진출처=문화재청·과천시·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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