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냄새 물씬 풍기는 '짭조름한 단상'

인천 덕적군도에서 태어나 바다를 모태 삼아 시작 활동을 해 온 이세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서쪽이 빛난다>가 출간됐다.

"서쪽이 내게 말을 한다. 안이 어두워야 밖이 잘 보인다. 그것은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땅의 가장 추운 말이었다. 서쪽이 내게 낮은 목소리로 들려준 말이다."

시집 말미의 산문 '서쪽의 말'에서 밝히듯 시인에게 고향 섬과 바다는 곧 '서쪽'이며, 가장 아프고 추운 지명이다. 그 극한의 공간에서 길어올린 질박하고 웅숭깊은 언어들이 시집 전편에서 살뜰하게 빛난다.

어떤 불행과 고통 속에서도 '거룩한 맨손'의 삶을 자처하는 사람들. 이세기 시인은 운명인 듯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받아 적는다.

시집을 펼치면 강다리(싱어. 멸칫과의 바닷물고기), 갯바탕(갯벌이나 갯가), 북새(노을), 뻘뚱(보리수 열매), 노래기꽃(금잔화) 같은 토속언어들이 파닥이는 동시에 뭇 생명을 향한 경외감이 뜨거운 피처럼 솟구치며 전율을 전한다.

그리하여 시집 전편에는 넓고 깊은 바다가 전하는 삶의 전언(傳言)들, 고달픈 섬사람들의 삶,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간과했던 신비로운 섬의 언어들을 발음하게 되며, 그리하여 짭조롬한 바닷물이 시나브로 몸속으로 밀려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쩌면 <서쪽이 빛난다>는 신비로운 밀어(密語)와 짭조롬한 모어(母語)로 짜여진 '바다책'과 같은 시집이라고 일컬어도 좋다.

그 속에는 감미로운 낭만보다는 강퍅하고 신산한 섬 생활이 놓여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피 맺힌 그리움이자 반드시 기록해야만 할 역사이다.

그리고 그것은 "강화도 읍내 밥집 아리랑집엔/ 특별한 차림표가 있다/ 새우두부젓국/ 염하에서 잡아온 새우에 두부와 무를 설컹설컹 썰어/ 젓으로 간을 하여 탕으로 끓여 내온 국엔/ 내 아버지의 입 냄새가 난다 (중략) 평생 배를 타다 물고기 눈처럼/두 눈을 뜨고 죽은 아버지"('새우두부젓국' 부분)를 떠올리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와 함께 시인은 바다가 타전하는 신비로운 삶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서해 낙도와 무인도를 서성거린다. 그러다가 문득 멈춰 서서 "이제 나는 두렵다 내가 걸어왔던 길이"('집에 와서' 부분)라고 쓴다.

그러나 시인은 결국 그 두려움을 외면하기보다 마주하기를 택한다.

"이 시가 쓰였던 시기에 바다는 원혼이 끊이지 않았다. 평화가 있으면 불안하고 불안하면 도리어 평화로웠다. 역설적인 이 말은 국경 가까운 섬에 사는 누군가가 들려준 말이다. 시는 자신이 발 딛고 선 땅에서 언어를 기른다. 그렇게 시는 자신의 육체를 갖는다. 시집을 내매 두렵고 부끄럽다. 헐벗은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들께 조촐히 시를 건넨다." ('시인의 말')

이세기 시인은 1963년 인천에서 태어나 1998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먹염바다>, <언 손>과 시론집 <백석, 자기 구원의 시혼>, 산문집 <이주, 그 먼 길>, <흔들리는 생명의 땅, 섬> 등을 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