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논산훈련소에서 귀가 닳도록 들어야 했던 군사 금언이 있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납될 수 없다.(맥아더 장군)' 이를 패러디한 게 더 재미 있었다.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될 수 있어도 배식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납될 수 없다.' 배 고프던 시절의 훈련병들은 식사 시간이면 배식 당번의 주걱질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제 식판의 밥 무더기보다 남의 그것이 더 수북해 보이는 상대적 박탈감이다. 그래서 한 부대의 사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배식의 실패' 이론이다. '음식 끝에 마음 상한다'는 속담의 군대 버전인 셈이다.

▶코로나19 풍랑에 국민들의 삶이 흔들리는 시절이다. '악마는 뒤에 쳐진 사람을 먼저 덮친다'고 하듯, 사회적 약자들이 더 힘들다.

지난달 24일 경기도가 먼저 나섰다. 도민 모두에게 10만원씩의 '재난기본소득'을 주기로 한 것이다. 재산, 노동의 유무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매년 '국제기본소득박람회'까지 여는 경기도가 코로나 사태를 맞아 마침내 실행에 들어간 것이다. 중앙정부도 나섰다. 소득 하위 70%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100만원 긴급재난지원금'이다. 70%를 가리는 기준으로 건강보험료가 제시됐지만 이런저런 불만들이 많다. 고용불안도, 소득이 줄 일도 없는 공무원만 좋게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2018년 소득 하위 90% 이하를 대상으로 아동수당이 시작됐다. 그런데 그 상위 10%를 가려내는 데 들어가는 행정비용이 1626억원에 이른다는 연구보고서(한국보건사회연구원)가 나왔다. 상위 10%를 추려내지 않고 모두 다 줄 경우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1588억원이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새로 신청하는 사람들의 소득도, 매년의 소득변동도 일일이 확인해야 해서다. 90% 가구들의 주민센터 방문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있다. 어느 기초지자체는 상위 10% 1명을 찾아내기 위해 주민 1만~2만명을 조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던 수원시가 기본소득 유탄을 맞았다는 뒷얘기다.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이 나오자마자 각 시·군에서도 다투어 자체 기본소득 지급을 밝혔다. 그러나 처음 수원시는 현금 지급은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왜 우리만 안주느냐"는 불만이 나오자 결국 '수원형 기본소득' 지급을 밝혔다. 기본소득이냐, 지원금이냐, 어느 게 정답인지 아직은 모른다. 다만 코로나19 못지않게 국민들에 대한 배식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듯 싶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