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의 존재를 몰랐던 조선시대 때는 천연두를 숙명적 역병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구중궁궐이든 저잣거리든 빈부와 귀천을 가리지 않고 창궐했기에 조정에서는 정사를 일시 중단했고 사대부들은 문상(問喪)도 마다한 채 칩거했으며 백성들에게 부과했던 사역도 중단됐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대궐의 높다란 담도 훌쩍 뛰어넘었다.

숙종은 첫 부인 인경황후 김씨를 천연두로 잃었다. 자신도 재위 9년 계해년(1683년)에 역대 임금 가운데 처음으로 천연두를 앓았다. 자식 사랑이 지극했던 어머니 명성왕후는 그에 놀라 점을 쳐 무당이 시키는 대로 엄동설한에 소복차림으로 물벼락을 맞았는데 그게 병이 되어 그해 12월 승하했다. 부인과 어머니를 잃게 한 천연두였다.

고대 이집트의 왕 람세스 5세,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도 천연두로 고생했다. 고금의 수많은 백성들이 그 희생자였음은 물론이다. 1886년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 제중원(濟衆院)이 4세 이전의 영아 중 40~50%가 천연두로 사망한다는 연도 보고서를 낼 정도여서 천연두를 '악마의 병'이라고 불렸는데 이미 '악마의 무기'로 등장한 바 있다.

1755년의 일이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프랑스·인디안 전쟁 때였다. 오하이오강 주변의 인디언 땅을 둘러싸고 벌인 영국과 프랑스의 피비린내 나는 식민지 쟁탈전 때 영국군은 호의를 가장해 원주민에게 모포 두 장과 손수건 한 장을 건넸다. 그 직후 원주민 사이에는 원인불명의 병이 유행했고 한 식구 중에 반 이상이 죽었다.

영국군이 건네준 모포와 손수건은 천연두 병원의 환자가 사용했던 '병균'이었다. 면역력이 없는 사람에게 오염된 모포를 사용케 해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악행을 저지른 것이다. 영국군은 천연두의 무서운 전염성을 이용해 인디언의 전투력을 약화시키려고 그런 비열한 짓을 저질렀는데 비인도적인 생물 무기가 역사상 처음은 아니었다.

14세기 몽골 제국이 분열된 후 설립된 4대 칸 국 가운데 하나인 '킵차크 칸국'은 전투 중에 페스트 환자의 시신을 적진에 던졌던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적을 집단적으로 발병시켜 죽이려 한 세계 최초의 생물 테러였다고 전해진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치사율을 극도로 높인 독가스를 공기에 실어 퍼뜨리는 화학 무기까지 등장했다.

프리츠 하버는 암모니아 합성법 연구로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독일의 화학자다. 그의 연구로 비료 생산이 늘자 서민의 생활도 크게 향상되었다. 화학비료가 탄생된 덕분이었다. 그러나 한편에선 하버를 '독가스의 아버지'라 불렀다. 이에 앞서 독일은 1915년 4월 22일 벨기에 이프르(Ypres)에서 프랑스 군에게 독가스를 사용했다.

황록색의 독가스 안개는 썩은 생선 냄새 같은 악취를 풍겼다. 눈과 목구멍에 극심한 통증을 일으켰고, 온몸엔 물집이 생겼다. 프랑스 병사들은 구토와 함께 숨을 쉬지 못한 채 쓰러졌다. 곧 괴멸상태가 됐다. 이때 사용한 독가스를 개발한 것이 바로 하버였다. 그가 침식을 잊고 연구에 연구를 몰두한 끝에 택한 화학물질은 염소(鹽素)였다.

나치스 강제수용소에서 대량 살상용으로 사용했던 '지클론 B', 1984년 이란·이라크 전에서 사용되었던 '이페리트 가스', 일본 옴 진리교가 테러에 썼던 '사린가스'도 다 독일의 과학자들이 발명했다는 게 찜찜하다. 화학무기가 생물무기만큼이나 잔혹하다는 걸 인정한 UN 가입국대다수는 조약으로써 그 개발, 저장, 사용을 금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팬데믹이 닥치자 CNN은 '지옥문이 열렸다'고 했다. 각국에 사망자가 속출하고 마스크를 쓴 채 서로 격리 중인 모습이 지옥 가는 길 어디쯤인 연옥의 한 풍경처럼 어른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인간이 저질러 온 악행들을 냉정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언제고 누군가에 의해 또다시 악마의 무기가 등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