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결코 현실을 따라갈 수 없다.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 아우성이 나고서도 한참을 뒤처져 따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민생은 늘 피폐하다. 선거법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게 없다. 21대 총선에는 다수의 고등학생을 포함하는 18세도 투표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정치참여를 완강히 거부하는 교칙이 대부분의 학교들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사정은 체육회도 비슷하다. 체육단체가 선거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민선체육회장들을 선출했지만 현행 선거법에는 이들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을 막을 방법이 없다.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주 도내 한 지자체 민선체육회장이 특정 후보의 선대본부장으로 임명돼 거센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시민단체들은 체육회장을 민선으로 전환한 목적 자체가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본업에 충실하자는 취지였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나 현행 선거법 60조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에는 체육회장이 빠져 있다. 87조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기관 및 단체'에도 체육회는 포함되지 않았다. 대한체육회 정관이나 IOC의 올림픽 헌장에도 별도로 처벌 조항을 명시한 바 없다. 다만, 대한체육회 정관에 정치적 중립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한다. 결과적으로 현행법상 민선체육회장이 어떤 정치적 행위를 하거나 특정인의 당선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선거운동에 참여해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처벌 이전의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한체육회 정관을 따르면 굳이 처벌 여부에 관계없이 정치적 중립의무를 부과함으로써 법보다 우선하는 도덕성과 도의적 책임을 요구한다. 체육인으로서 품위와 긍지를 요구하는 셈이다. 이는 결국 체육회에 대한 신뢰와도 직결될 수 있는 문제다. 법은 결코 만능이 아니다. 모든 문제를 법으로 규정하거나 법으로써 규제하려는 사회가 좋은 것도 아니다. 법 이전에 체육인들의 양식과 상식으로 유지되는 조직이라야 희망도 있다. 미처 규제되지 않은 선거법 개정은 차차 모색할 일이지만 당장 나타나는 체육인들의 일탈도 조직의 높은 도덕성과 상식에 따라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기를 바란다.